정용래 유성구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IMF 이후, 포스트 코로나, 뉴 노멀(새로운 표준) 코리아, 새로운 세계질서 준비… 요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키워드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가 휘청거린다. 현 상황은 서막에 불과해 감염병이 잦아든 뒤에도 장기간 경제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속수무책 앉아서 당하고 있어야만 할까.

미국 남부를 초토화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우리나라 IMF 금융위기를 되돌아보자.

2년 전 여름 가슴 뭉클한 사연 하나가 회자된 적이 있다.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 시골에 사는 19세 가난한 흑인 청년 월터 카는 첫 직장인 이삿짐센터로 출근하는 날 자동차가 고장 난 걸 알게 됐다. 고객 집에 가야 하는데 32㎞나 떨어진 거리다. 월터는 일자리를 잃을까봐 밤새 걸어가기로 했다. 밤이슬을 맞으며 시골길을 걷다가 뛰다가를 계속하던 월터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붙잡아 추궁했다. 딱한 사연을 들은 경찰은 청년에게 아침을 사 먹이고 자동차로 목적지까지 태워줬다.

월터의 고향은 원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였다. 7세 이던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집과 재산을 몽땅 잃고 엄마와 함께 버밍엄으로 피신해야 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궁핍은 더욱 심해졌다. 그의 사연은 금세 미국 전역에 알려져 온정이 답지했다.

카트리나가 휩쓸고간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뉴올리언스 시내는 곳곳이 빈 건물이고 흑인거주지는 폐허로 남아있다. 미시시피강둑이 붕괴돼 시내 전역이 물에 잠겼다. 한때 메이저 정유회사가 지역경제를 책임졌으나 카트리나 이후 대부분 떠나 지역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은 어려운 지역 경제상황을 `카트리나 이전과 이후`로 갈라서 평가한다.

우리나라도 소상공인 매출감소나 고용상황이 악화될 때면 IMF를 기준으로 삼는다. "IMF 때보다 더 안 좋아"는 관용어가 됐다. IMF를 경험했던 국민이라면 치욕적인 금융대란과 대량 해고사태를 잊지 못한다. 많은 가정이 파괴됐고 삶을 포기하는 가장이 속출했다. 지금은 일반화된 연봉계약직은 IMF의 산물이다.

카트리나와 IMF는 개인이나 가족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재앙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연대(連帶)`에서 결정적 차이를 드러냈다. 우리나라 국민은 IMF 금융위기에서 금모으기 운동, 뼈를 깎는 구조조정 감내 등을 통해 2001년 3년 8개월만에 IMF를 조기 졸업했다.

미국에선 코로나 발생 1개월만에 2200만명이 실직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도 감염병이 진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뉴스 대신 격리·봉쇄조치를 강화하는 소식만 들린다. 사람의 이동을 막는다는 건 경제의 숨통을 죄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도 지역경제상황이 심상찮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불행중 다행인지 대한민국의 각종 조치가 전세계의 `뉴 노멀`로 제시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엄두도 못낼 국회의원 선거까지 치렀다. 유성의 바이오벤처기업 등이 개발한 진단키트가 세계로 수출돼 조기검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여러 나라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때가 되면 봄이 오듯 코로나 19도 지나갈 것으로 믿지만 포스트 코로나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카트리나와 IMF 이후처럼 `코로나 이후`의 삶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질곡을 겪을 전망이다. 중요한 건 우리 민족의 강점인 연대와 배려만 잃지 않는다면 어떠한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에겐 전 지구적 코로나 위기가 한편으로 기회일 수 있다. 새로운 세계질서를 준비하고 국가간 연대감을 조성하는데 대한민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용래 유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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