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2017년 작 `원더(Wonder)`의 어기는 평범한 10살짜리 소년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평범하지 않다. 어기는 태어나자마자 수술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27번의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수차례의 성형수술도 받았다. 하지만 그 어떤 성형수술도 어기를 보통 아이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어기의 얼굴에는 아직도 굵은 흉터가 남아 있고, 얼굴 전체가 마치 큰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어기를 처음 본 사람들은 흠칫 놀라고 만다.

어기는 열 살이 되던 해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학교 과정을 공부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그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하면서 살았다. 밖에 나갈 때는 우주 비행사 헬멧을 쓰고 다녔다. 덕분에 사람들은 어기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어기는 차가운 시선을 피하면서 살 수 있었다.

열 살이 되던 해, 어기의 부모는 더는 학교에 가는 것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10살의 소년에게는 더 많은 인생이 남아 있고, 언제까지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살 수는 없었다. 이제는 헬멧을 벗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현실과 직면하는 것을 더는 미룰 수도 없었다.

어기가 학교에서 제일 싫어했던 장소는 학교 정문 앞 작은 광장이었다. 학교의 모든 학생이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고, 수다 떨고, 장난을 치기도 하는 곳이다. 어기가 그곳을 제일 싫어하는 이유는 학교의 모든 사람이 어기에게 시선을 주기 때문이다. 특별히 어기에게 못되게 굴지도 않고, 뭐라고 수군거리지도 않는다. 비웃지도 않는다. 어기가 지나가면, 다들 그냥 어기에게 시선을 돌릴 뿐이다. 어기를 쳐다보고, 눈이 마주치면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어기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다.

시선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은 말을 한다. 시선을 받는 사람은 그 시선의 의미를 바로 느낄 수 있다. 존경의 시선이 있고, 경멸의 시선이 있다. 사랑의 시선이 있고, 미움의 시선이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대체 뭐지?", "이상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눈에서 광선이 발사되는 것도 아니지만, 시선이 폭력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샌더 길먼은 자신의 저서 `성형수술의 문화사`에서 사람들은 소속되어야 하거나 소속되고 싶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다른 구성원의 시선을 끌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다. 통과 욕구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원한다.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는 것이다.

시선의 폭력이 현실의 폭력으로 전환되기는 매우 쉽다. 경멸과 미움의 시선은 바로 차별과 폭력으로 변환될 수 있다. 부정적 시선은 단지 기분 나쁜 것이 아니고,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하는 정상성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자신의 외모를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타고난 외모 때문에 차별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고정관념과 편견이 강한 사회일수록 성형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을 바꿔야 할까. 수십 번의 성형을 해서라도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성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얼굴을 바꿔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교장은 어기를 괴롭힌 학생의 부모에게 말한다. "부인, 어기가 얼굴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기를 보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지 않을까요?"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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