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환 세종 으뜸초 교사
박경환 세종 으뜸초 교사
으뜸초등학교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토끼네 집"이다. 따뜻한 봄날에 찾아온 토끼 두 마리는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최고의 인기쟁이다. 토끼들은 두 눈으로 똘망똘망 작은 두 콧구멍을 킁킁거리며, 아이들이 직접 키운 여러 채소나 풀들을 야금야금 얻어먹었다.

3년 3개월의 오랜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하여 으뜸초등학교로 출근했을 때의 첫 느낌은 학교가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이었다. 학교 중앙에는 아이 놀이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는 물고기들이 살 수 있도록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여러 채소를 키울 수 있는 텃밭, 그리고 텅 빈 작은 토끼집이 있었다. 나는 그 텅 빈 토끼집이 눈에 들어왔다.

3학년 1학기 과학에 "동물의 한살이" 단원이 있다. 나는 3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과 협의하여 토끼를 키워보기로 결정하였고, 주변 지인으로부터 토끼 두 마리를 분양 받았다. 토끼 두 마리가 학교에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많은 아이들이 토끼를 보러 토끼장을 찾아왔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이 "토사모(토끼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동아리를 자율적으로 조직하고, 날마다 두세 번씩 건초와 물을 주고 청소도 하였다. 주말에는 순번을 정해 책임감 있게 한 명씩 나와서 먹이와 물을 주었다.

어느 날 우리 반 아이들은 토끼가 집에만 있어 답답해 보인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라고 묻자, 아이들은 토끼가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자고 하여 "토끼장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아이들과 토끼장을 만들기 위해 마당 길이를 측정하여 가로 10m, 세로 2m, 사다리꼴 모양의 토끼장 설계를 하였다. 토끼장에 필요한 목재를 구입하고, 토끼장 기초 공사는 안전을 위해 선생님들과 하였으며 나머지 철망을 씌우고 대문을 설치하는 등의 작업은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토끼가 토끼장과 울타리 안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토끼를 키우는 동안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토끼가 울타리를 뛰어넘어 탈출하는 바람에 우리 반 전원이 토끼를 잡으러 학교 이곳저곳을 뛰어다닌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 후 나는 토끼와 함께하는 자연친화적인 수업을 했다. 한 아이는 토끼의 감정을 알아보겠다며 며칠 동안 토끼를 관찰하다가, 토끼가 가끔 뒷발로 땅을 딱딱 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토끼가 불만이 있으면 뒷발로 땅을 친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알아냈다.(나중에 확인해보니 토끼가 스트레스를 받을 시 이러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과학 수업 시간에 화단 흙과 운동장 흙을 비교하는데, 아이들이 토끼장 흙과 다른 흙을 비교해보자고 하여 토끼장 흙과 학교 텃밭의 흙을 비교하였다. 토끼장 흙을 파면 학교 텃밭의 흙에 비해 유난히 지렁이들이 많고 토실토실하였는데, 아이들은 토끼똥이 흙과 섞이면 지렁이들이 살기 좋은 텃밭 환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식물이 잘 자랄 거라는 결론을 내어 토끼 똥을 학교 텃밭에 거름으로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세운 리케이온 학당에서 정원을 거닐며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물이 가득한 정원을 거닐며 학생들을 가르쳤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교실 밖에서도 질적으로 유의미한 배움이 가능하지 않을까?

토끼는 한 해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옆 유치원 학부모께서는 아이들을 데려와 구경하러 오시기도 하고, 어떤 동네 어르신은 직접 키우신 당근이나 비트를 주고 가셨다. 아이가 토끼를 보고 싶어 해서 매 주말마다 찾아오신다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1년을 책임감 있게 토끼를 키워준 우리 아이들에게도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박경환 세종 으뜸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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