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최이현 옮김/ 아날로그(글담)/ 323쪽/ 1만 6000원

흔히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하면 쿠데타의 광경을 떠올리기 쉽다. 거리에 군인과 탱크가 늘어서 있고, TV에서는 정부의 대국민 선전이 흘러나오는 모습. 그러나 현재, 체제 전복 형태의 군사 쿠데타 가능성은 매우 낮다. 독재자의 등장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과거와 달리 현대 민주주의에는 많은 위협들이 존재한다.

지난 4·15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한 사례처럼 민주주의의 틈새를 파고 든 권력 싸움이나 부정 투표, 행정 과용 가능성 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케임브리지대학 정치학 교수 데이비드 런시먼은 이 책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다가올 미래를 다각도로 통찰한다.

영국 정치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저자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논할 때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 정치학 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를 한순간에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대재앙이나 기술에 의한 사회 장악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고루 살핀다.

독재자의 등장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과거와 달리 현대 민주주의에는 많은 위협들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2020년 들어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코로나19 판데믹과 같은 통제하기 어려운 전염병이나, 지구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기후변화나 핵전쟁, 혹은 네트워크의 붕괴 같은 참사가 일어나면 사회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고 그는 설명한다. 또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계 그 자체, 혹은 기술관료가 대중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단지 정치체제의 실패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무너져도 민주주의는 함께 파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에는 사회 전반의 상호연결성이 극대화돼 어느 한 분야만 무너져도 연쇄적으로 전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이 존재한다.

런시먼은 기후변화의 위기를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20세기에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했던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크나큰 파장을 일으켜, 실제로 정치권의 행동을 이끌어 냈다.

정보 기술의 발달도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이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기술은 순수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케 해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등이 바로 그러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급부상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저자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가 정당이라는 타협 기구를 제거함으로써 마녀사냥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인터넷의 보급이 정보의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며 정치인들이 국가기관을 이용해 국민들을 감시해 권력을 강화하는 예를 보여 주기도 한다. 런시먼은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대한 낙관론과 비판을 모두 제시함으로써 멀지 않은 미래에 민주주의가 치명적인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강은선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강은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