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기업협의회 회장
안경남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기업협의회 회장
한국과 독일은 직선거리로 8378km 떨어져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1시간 넘게 걸린다. 지리적으로는 꽤나 먼 나라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두 나라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양국은 정부합동 화상회의를 열어 코로나19 대응 협력 방안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독일 측은 한국이 개인정보 보호와 방역 간 최대한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한국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체제 및 애플리케이션 등 정보통신(ICT) 기술을 활용한 선진적 대응방식 등 구체적 경험에도 관심을 보였다.

독일이 처음부터 한국의 대처를 호평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한 헌법학자는 공공보건을 위해 격리된 개인을 감시하는 것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독일 누적 확진자가 8만 499명, 누적 사망자가 990명으로 폭증하자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다.

독일 정부는 가족을 빼고 3명 이상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대부분의 상점 운영도 막았다. 차범근과 손흥민 등이 뛰었던 분데스리가도 멈췄다.

코로나19와의 격렬한 전쟁에서 우리는 대처능력과 대처 속도 모두에 있어 모범을 보여줬다. 때론 10초에 80점을 받을 수 있는 답안이 이틀에 걸쳐 만든 100점짜리 답안보다 효과적일 때도 있다는 것 또한.

독일이 한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을 보면서 이제까지 독일로부터 배워왔던 입장에서 격세지감을 느끼며 나 개인적인 독일 거래선과의 오랜 인연 속의 한 경험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네덜란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의 독일 업체를 상담 차 방문했다. 오전 상담에 50대 사장과 30대 영업부장이 나왔는데 사장은 바라만 볼 뿐 영업부장이 `당신 회사가 진짜 제조업체 맞냐`는 등 추궁에 가까운 질문들을 던졌다.

이미 컨테이너 3대 물량의 우리 회사 제품을 수입한 바이어였지만 당시 한국에 대한 불신이 컸기에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다. 셋이서 같이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 상담에서야 50대 사장이 직접 나섰다. 한국 제품을 수입했다가 사기성 피해를 당한 적이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뒤이어 그는 오전 상담에서 당신의 진정성과 높은 품질을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요구안을 내놓았다. 이 날 상담을 계기로 이 독일 기업은 25년 간 인연을 이어오며 연간 400만 달러 규모로 우리 제품을 수입하는 유력 바이어가 됐다.

당시 30대 영업부장은 5년 전 사장으로 승진했는데 얼마 전 만남에서 코리아가 자신의 일상에서 얼마나 깊이 자리하는지 느끼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아침에 한국산 스마트폰의 알람에 맞춰 일어나 삼성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마시고, LG 전자레인지로 데운 음식을 먹고, 삼성 노트북으로 일하면서 우리 회사 제품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퇴근 후 LG TV로 축구경기를 보고, 빨래는 삼성 세탁기에 맡기고, 이 독일인 사장과는 가족끼리도 교류하며 서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막역한 사이이다 보니 그의 진정성을 의심치 않는다.

독일 사장의 말을 듣고 유럽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력과 국격을 실감했다. 25년 전 첫 만남을 돌이켜 보면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변화를 온 몸으로 느낀다.

아울러 더욱 수준 높은 제품을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무도 느꼈다. 한국과 독일은 공통분모가 많다. 제조업 강국이고 근면 성실하며, 분단의 아픔도 공유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부터 ICT, 바이오까지 서로 이끌고 밀어줄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코로나19 속에 빛을 발한 한국과 독일의 협력 관계가 한층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안경남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기업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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