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이자 은퇴 후 뉴욕 메츠 감독을 역임한 로렌스 요기 베라 감독이 남긴 말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뜻이다. 주로 지고 있는 팀에서 선수 독려용 멘트로 사용된다. 야구에서 9회말 역전은 언제나 짜릿하다. 하지만 이기고 있다가 역전 당한 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보다 더 허탈하고 기운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기고 있는 팀에게는, 경기 종료 시까지 방심하지 말고 승리로서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이 말이 적용될 수 있겠다.

지난 4월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싱가포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신규 확진자 수를 두 자릿수 이하로 유지해 방역 모범국가로 꼽히던 싱가포르에서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해 신규 확진자가 5일간 연속 세 자릿수로 증가하고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싱가포르는 사회 질서가 잘 확립되어 있으며 시민의식이 높은 나라이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라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이다. 초기 방역에 성공해 3월 중순까지 총 확진자는 300명 남짓이었고, 사망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아 그야말로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로 손꼽히고 있었다.

중국인 입국이 차단되기 전인 1월 중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들렀던 한약방 직원 하나가 첫 `슈퍼 전파자`가 되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싱가포르 전역에 퍼트리는 일이 발생했다. 관광객을 인솔한 투어 가이드와 한약방 주인 가족 등도 연이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러한 제반 상황은 2월 초 지역 사회 감염을 확인한 보건 당국의 감염원 추적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에 싱가포르는 중국발 방문자에 대한 입국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고 강력한 확진자 동선 추적 및 접촉자 격리 조치를 시행했다. 이러한 방역 대책이 효과를 발휘해, 그 단계에서 더 이상의 대량 확산을 막는데 성공했다. 이후 산발적인 감염은 있었으나 3월까지 하루 확진자 수를 30명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초기의 방역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싱가포르는 이후 몇 가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학교 개학이었다. 싱가포르의 학제는 4학기 제도로, 1월부터 3월 중순까지의 1학기 후 짧은 봄방학 기간을 가지고 3월 23일 2학기 개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개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교육부 장관은 성인에 비해 어린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상대적으로 감염률이 낮다는 것과 1학기 때 휴교 없이도 학교 내 감염자 발생이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예정대로 개학을 강행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개학 후 이틀 만에 한 유치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고, 연이은 학교 내 감염 확산에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2주일 만에 개학 조치를 철회했다.

두 번째는 이주 노동자 기숙사에서의 집단 감염이었다. 싱가포르에는 해외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생활하는 기숙사가 다수 있는데, 집단으로 함께 지내는 구조이기에 감염 취약 시설이었다. 이곳에서 수백 명 단위로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감염 경로 추적이 되지 않는 지역사회 감염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확진자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총 확진자 수는 4월 초 1000명을 넘은 후 불과 2주 만에 세 배 이상 증가해 현재 3천명을 넘어섰다. 한 순간의 방심이 국가적 위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공적인 코로나19 극복 사례로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3월 초, 국내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 국가가 하루하루 늘어가던 시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한 정책 당국과 의료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모여서 이룩한 성과이다. 국가 이미지가, 우리나라의 `진짜` 국격(國格)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아져 가고 있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인정받고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힘차게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자칫 긴장의 끈을 놓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명심해야 한다. 감염병에서는 한두 명의 슈퍼 전파자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다. 싱가포르의 예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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