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 듯 말 듯 / 꽃이 필 듯 말 듯 / 해마다 3월 21일은 / 파밭의 흙 한 줌 찍어다가 /내가 처음으로 / 시를 쓰는 날입니다…모든 이에게 /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는 / 봄햇살 엄마가 되고 싶다고 / 춘분처럼 / 밤낮 길이 똑같아서 공평한 / 세상의 누이가 되고 싶다고…`

해마다 봄이 되면 이해인의 시를 새 노트에 옮겨 적는다. 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봄햇살을 나누는 삶을 살겠노라 한번 더 다짐하곤 한다.

겨울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자리에 앵두꽃이 소담하게 피었다. `아! 아이들이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담장 가득 개나리가 노랗게 늘어졌다. `아! 학생들이 이 멋진 모습을 봐야 하는데.` 교문 옆 꽃사과 나무 한가득 애기 사과 닮은 꽃망울이 다닥다닥 열리더니 `팡팡` 꽃잔치를 펼친다.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운동장 한가운데 잔디가 봄을 물들이는 모습, 매일매일 손가락 한 마디만큼 붉기를 더해가는 꽃잔디,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서도 곱게 핀 보랏빛 제비꽃 무리, 건물 사이사이 교정 구석구석, 뿌리 내릴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피어 있는 민들레…. 교정을 거닐다 세 잎 클로버가 소복한 화단 귀퉁이에 발을 멈춘다. 네 잎은 행운, 세 잎은 행복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평범, 보통, 일상…. 어쩌면 지금 일상이 특별함이기에 더욱더 일상의 행복을 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이치란 궁극에 달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통하게 되며, 통해야만 오래 간다.`는 주역의 한 문장을 생각한다. 이제는 오늘의 특별한 하루도 일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정은 고요한 듯 하지만, 어느 새 노란 개나리 핀 자리에는 초록 잎이 자리를 차지하고, 앵두꽃 진 자리에는 열매가 다글다글 매달려 있는 것처럼 학교도 하루 종일 배움을 위해, 가르침을 위해 분주하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지만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협의하고 탐색하고 공유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원격 수업이다 보니 근무 시간은 물론이고 퇴근 후에도 컴퓨터 앞에서 밤늦게까지 학생 한 명 한 명의 학습 확인 작업을 해야 한다. 모든 학생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앱은 물론 전화며 문자며 카톡이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콘텐츠 분석이며 직접 영상을 비롯한 학습 자료를 제작하느라 퀭해진 선생님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지만 어떻게 해서든 `통(通)`하고자 하는 모습에 감동할 뿐이다.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방영되었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새로 취임한 백 단장의 일갈이 생각난다.

"각자가 가진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지게 됩니다.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안 했던 것들을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하며 안 했던 일들에도 매진하고 있다. 바로 `궁즉변 변즉통`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드라마가 끝나면서 화면 가득 채웠던 이 자막은 그때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니, 힘겨워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며 버텨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에 대한 위로와 지지로 뜨겁게 다가온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찾으려, 서로서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이 모습이 학생들을 만나는 날을 앞당기는 길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나도 늘 보아왔던 사이처럼, 어제 만났던 사이처럼 서로가 통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거라 믿는다. 학교는 이렇게 작은 거 하나하나 함께 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다.

이도화 문화여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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