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피아니스트
박상희 피아니스트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에서의 베스는 그동안 그려진 모습에 일갈을 가하듯 조용하지만 강하게 그려졌다. 재기발랄하고 명랑한 자매들 사이에서 대조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캐릭터로 그려지던 베스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작가는 얌전하고 소극적인 베스를 묘사하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을 연출했었다. 그때의 베스는 가벼운 찬송가 정도를 연주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베스는 피아노 연주로서 극 전체에 힘을 실어가며 베스의 새로운 생명력을 보게했다.

베스는 왁자지껄한 자매들끼리의 장난이나 싸움 속에서 한걸음 벗어나 늘 행복하고 따뜻했던 장면을 차곡차곡 눈과 마음에 담는 사람이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시기 어린 질투도 베스에게는 예외다. 피아노를 연주하면 모두가 평온히 그녀의 연주를 듣는다. 가장 약하고 조용한 존재였지만 가장 강력하게 그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린 딸을 잃은 아픔을 가진 옆집 로렌스 아저씨에게는 슈만의 `나비`와 `어린이 정경`으로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건넨다.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음악은 조의 친구 프리드리히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2악장이다. 베스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의 모인 자리에서 베스의 피아노는 그렇게 또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연결해준다.

이야기의 배경인 19세기의 피아노 모습도 흥미롭다. 베스가 로렌스 아저씨에게 선물로 받은 테이블 모양의 스퀘어 피아노가 등장한다. 당시에는 피아노가 급격히 발달한 시기로 기린 피아노, 리라 피아노 등 매우 다양한 모습의 피아노들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또한, 중산계층의 성장으로 피아노가 각 가정에 많이 보급된 시기이기도 하다. 가족들의 여흥 정도로만 연주되던 피아노가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교양 수업이 되어가고, 시기와 맞물려 여류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책 속에서는 그저 운명에 순응해야 했던 한없이 약하고 안쓰러웠던 베스였는데, 그런 그녀가 음악으로서 삶의 주체가 되어 자신과 이웃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비록 각색일지언정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베스가 영원히 행복하기를.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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