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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포럼] 과학영웅을 기대하며

2020-04-07기사 편집 2020-04-07 0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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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인류 문명은 건강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다. 인류의 생명을 위협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평균수명 80대의 시대를 살고 있고 인류 문명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알고 있는 혈액형의 과학을 모를 때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하거나 출산 도중 수혈을 제대로 못 받아 사망했다. 오스트리아 생리화학자, 카를 란트 슈나이더는 비인대학교의 병리-해부학 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던 중 1900년 32세의 나이에 시험관 속에 피를 섞는 실험을 하다가 특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어떤 경우에는 피가 엉겨 붙고 어떤 경우에는 멀쩡했다. 그것을 알고자 연구에 전념해 ABO와 Rh식 혈액형을 발견하고 노벨생리의학상 수상과 10억 이상의 인류 생명을 구했다. 지금 세계 헌혈의 날인 6월 14일은 그의 생일이다. 과학자가 생명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순간이다.

인류에게 당뇨병은 치명적인 사망 원인이었고 소아 당뇨병 사망도 수천만 명에 이르렀다. 캐나다의 의사였던 프레드릭 밴팅은 친구가 당뇨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집요한 실험 끝에 소와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한 인슐린을 13세의 당뇨병 환자에 투여해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캐나다 정부는 밴팅의 공적을 기려 밴팅연구소를 세워 소장으로 임명했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영국왕 조지 5세는 기사 직위를 수여했다. 그는 당뇨병 환자와 캐나다 국민의 영웅이었다.

2009년 8월 15일 이후 신종인플루엔자가 확산됐고 5개월간 70만 명이 넘는 환자와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공포가 확산됐으나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의약품 타미플루가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며 더 이상 격리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게 됐다. 사실 타미플루는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의약품이나 이를 개발한 과학자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사의 한국인 과학자 김정은 박사였다. 로슈는 이 약 하나로 2009년 1조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약사 성장과 신종플루 공포의 탈출을 도운 숨은 영웅이 있다는 사실은 의약품 연구와 개발의 파이프라인 어딘가에 영웅이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를 살상하며 공포로 몰아넣었던 천연두는 전파가 쉽고 치사율은 30%에 이르렀다.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과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인류 최초의 백신을 만들었고 오랜 기간의 백신 접종 포위 전략으로 천연두는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지석영이 종두법을 보급하며 천연두 예방과 치료의 기반을 닦았다. 어떤 과학자는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고 어떤 과학자는 이를 다양하게 적용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영웅들을 통해 인류의 생명은 연장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인류문명을 멈춰 세우고 있다. 이윤을 앞세워 환자 수가 적은 바이러스 연구에 소극적이었던 과학기술 연구 시장과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소홀히 해온 많은 국가들의 정책으로 인해 자본주의 성장이 멈추는 역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인류문명과 과학기술의 상관관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들고 있다. 인류문명을 크게 흔들어놓은 코로나19의 대응 과정은 검사, 치료, 방역 등과 관련한 과학기술적 지식의 창의적 적용, 과학기술인들의 헌신, 과학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정책과 국민적 참여가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신종질병이 빈번하게 창궐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끊임없이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제 과학기술은 한두 명이 아니라 집단적 협업을 통한 무수한 과학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산업화, 이윤 중심의 인류문명에서 건강, 사람, 안전, 환경 중심의 새로운 인류문명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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