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천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박동천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코로나19에 휩쓸려 황폐해진 문화예술계의 현 상황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전체의 모든 노동인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문화예술인들의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불안정한 고용상태는 고사하고 불규칙적인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늘상 경제활동의 끝자락에 위치한 그들의 삶은 이런 위기 상황에 처하면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벼랑 끝에 내몰리기 십상이다.

전시나 공연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 창작지원비나 출연료는 물론 기대했던 작품판매 수입조차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해 예술창작자들의 열정과 의지가 한번 꺾이고 나면 그들이 창작활동을 재개하기는 극히 어렵게 된다. 예술 활동은 소상공인이 그러하듯 조그만 점포와 자본 그리고 생산기계가 다시 주어진다고 쉽게 회복할 수 없다. 시대적 감각에 따른 창조적 감수성, 최적화된 신체와 정신의 균형감, 관객의 기대에 호응할 수 있는 순발력은 지속적인 작업과 훈련 그리고 관중의 피드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발표를 앞둔 창작자들은 마치 올림픽대회를 준비하는 국가대표선수들과 같이 고도의 집중된 정신적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한참 자신의 창작토대를 구축해가고 있는 청년예술가들이 겪게 될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은 더욱 지난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3월 23일 발표된 모니카 그뤼터스 독일 문화부 장관의 성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뤼터스 장관은 독일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500억 유로(67조원) 규모의 문화예술계 지원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예술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주목을 끌었다. 그에 의하면 "독일 예술계가 국가경제에 연간 1000억 유로 이상을 기여하고 있으며 화학, 에너지, 금융서비스 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의 민주적 사회는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적, 언론 풍경을 필요로 한다. 창조적인 사람들의 창조적인 용기가 우리로 하여금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을 창조할 모든 기회를 잡아야 한다. 예술가는 없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지금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예술가를 지원해야 할 당위성을 이보다 명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지배적인 이론은 사회적 긴장 완화론이었다. 문학이나 예술은 압력밥솥의 밸브와도 같은 기능을 하기에 갈등과 모순이 팽배한 사회적 압력이 한계치에 도달하면 그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 창조적 문화산업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술가의 노동은 상품과 같은 경제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과 달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공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야 독일과 같은 대규모 긴급 예술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독일 문화부장관의 성명에서 우리의 부러움을 사는 대목은 그 예산 규모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독창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사회 전문 인력으로서 공공선에 기여하는 창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합의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합의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어떤 경험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국민의 문화향유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예술인의 삶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국민이 문화향유권을 누리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제도적으로 그들의 지위를 인정하고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지원은 예술의 공적인 역할 수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그 성과는 결국 시민들에게 환원된다. 지금 신속하게 위기에 처한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동천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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