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하우스 센텐스, 함기석 지음/ 민음사/ 184쪽/ 1만 원

디자인하우스센텐스
디자인하우스센텐스
기하학적 이미지와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인 함기석(54)이 신간을 냈다.

시인 김혜순은 함기석의 시를 보며 `발명의 시`라고 표현했다. 그는 "함기석의 시는 운율이나 언어사용, 시 장르에 대한 자기 나름의 천착이 모두 남다르다. 한국 시사를 둘러봐도 이만한 발명은 드물다"고 평가했다. 함기석은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이전 시집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에서 추상적 기호로서 죽음의 풍경을 그려 냈던 그의 시력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그동안 초현실과 현실, 과학과 수학을 종횡무진 오가며 탐구한 함기석의 `언어와 시` 설계도를 볼 수 있다.

일상적 언어가 상투적 의미를 실어 나르거나 추구하는 반면 시의 언어는 이를 성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시 역시 `의미`를 추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의미` 자체를 의심한다면? 의미는 잠깐 나타났다 다른 의미로 교체되는 순간적이고 유령 같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언어가 아니고서는 사물과 만날 수 없고 사물과 만난다는 것은 `의미`로 연결된다. 언어는 필연적으로 사물을 왜곡하기에 사물은 호명되는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공간`에 집중하며 현실 위에 초현실적 세계를 구축하는 가운데 언어는 끊임없이 운동하며 시공간을 지배한다. 시간과 언어를 따라 한순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 무한 공간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는 센텐스(sentence·문장)로 지어진 집이다.

그의 언어는 `움직임`이다.

요동치는 언어들은 시공간을 휘고 뒤집는다. 현실의 공간은 어느새 초현실적 세계가 된다. 출근길 도시는 거꾸로 뒤집히고 하루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름다운 공회전을 시작한다. 이러한 초현실적 상상력이 실현될 수 있는 이유는 이 공간이 `센텐스`로 이루어진 기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문장들은 자신에 앞선 문장들, 즉 자신의 "시간적 선구자였던 텍스트들을 살해"하며 공간을 붕괴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문장은 곧 형을 선고하는 행위, 센텐스(sentence)인 셈이다. `디자인하우스 센텐스`의 세계는 무의식적이고, 언어의 자율성이 극대화된 무한의 공간이다. 시인이 설계한 다차원의 건축물에서 언어는 그 설계마저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센텐스를 따라 휘고 뒤집히는 다섯 개 공간을 여행하고 나면, 독자들은 언어의 최대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함기석은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동시집 `숫자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동화 `상상력학교` 외에 시론집과 비평집을 출간했다. 박인환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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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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