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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아주 오래된 커다란 단지 속 잘 발효된 노래 '겨울나그네'

2020-03-31기사 편집 2020-03-31 0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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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영선 성악가
산과 바다를 이따금씩 찾아 나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과의 거리까지 멀게 살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전시회든 수공예든 음악회든 시간나는 대로 나는 사람의 감성이 빚어내는 모든 범위를 좋아한다.

코로나로 뒤덮힌 뉴스 속에서도 지난 2월 8일 대전 소울브릿지 초청 바리톤 박흥우의 겨울나그네24곡 전곡이 연주됐다. 예상대로 적은 인원의 사람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숙연하게 연주회에 몰입됐고 이제 60의 나이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너무나 자연스런 자태로 진지한 삶 자체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겨울의 끝에서 바리톤의 겨울나그네를 듣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술적 경지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이미 피셔 디스카우나 마티아스 괴르네의 음반으로 또한 대전의 바리톤 차두식 교수 등등의 연주로도 제각각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의 이중주로 들어왔지만 음악인생 후반기에 들려주는 '겨울나그네'는 인생이야기처럼 깊은 의미를 담아냈다.

정확한 딕션과 그저 자연스럽고 편하게 풀어내는 너무나 능숙한 음악과 몸에 베인 편한 호흡처리는 아직도 그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있는 거장으로 느껴졌다. 제목처럼 겨울의 느낌으로 시린 인생을 살아가는 구도자처럼 쓸쓸한 눈밭 같은 전곡연주였다.

겨울나그네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고통, 절망, 죽음의 상념들…. 마을 어귀에서 손풍금을 연주하는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권유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데 성악가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어 덧붙인다. 베이스 연광철은 보통 청년이 1곡에서 이별을 고하고 난뒤 24곡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해석하나 1곡에서 이별을 고한 주인공이 실제로는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못하고 23곡까지 그 집 곁을 맴돌다가 24곡 거리의 악사에서 비로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곡을 썼던 슈베르트의 나이가 30세. 그의 삶 역시 고독했고 2년 뒤 작곡자 슈베르트는 가난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겨울나그네 24곡 중 1부 12곡은 어둡고 쓸쓸한 슬픔을 노래하고 2부 첫곡(13번째 곡)의 우편마차는 편지가 올리없다는 한탄 섞인 괴로움을 드러내며 시작됐다. 갈수록 큰 좌절이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도 다시 길을 떠나고 살아갈 용기를 찾는 곡 들중 한 곡의 시의 내용을 소개하면 22번째곡인 Mut(용기)에서 "마음의 탄식 느끼지 않겠네. 탄식은 바보나 하는 짓. 즐겁게 세상 속으로 들어가리라…. 넓고 넓은 이세상 우리가 주인이라오".

24곡 어느 곡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곡이 없으며 의미가 깊지않은 시가 없었다. 계절적으로 겨울이나 마음이 겨울 같을 때 이곡 전곡을 감상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온천지가 봄의 꽃이 만개했음에도 우리는 겨울에서 머문 느낌이다. 그러나 봄이 어김없이 오듯이 우리는 희망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회로 인해 마음이 오래도록 따뜻해져 올 수 있듯 힘듦의 단조가 끝나고 끊임없이 마음의 고향을 산책하며 장조의 온기를 찾길 바라고 또 바란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의 주인공이니 끝까지 살아남아 희망을 얘기해주는 인생선배들이 되길 소망한다. 박영선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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