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이다. 혹자의 말대로, 인간들의 탐욕으로 비롯된 자연생태계의 점진적인 파괴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번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박쥐들의 생태계 교란이 이번 바이러스들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면, 실제로는 예견됐어야 당연할 지도 모른다. 경고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그리도 뚜렷했던 사계절의 변화는 이제 옛말이 된듯하고, 도처에서 분출되는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이번 사태이전에 벌써 마스크들의 다양한 패션을 우리사회에 선보인지 오래다. 가끔 해외 토픽란을 장식하는 빙하의 침식이 먼 나라의 얘기였던 것처럼,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생태계의 교란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즉각적인 피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해 온 것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염려는, 국적 없는 자본의 탐욕과 야만적인 산업화에 항시 밀릴 뿐이고, 이 망가진 미래의 환경에 노출될 우리 후손들에 대한 걱정은 현재의 풍요와 안락함의 유혹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셈이다. 방송에서 복수의 유럽 정상들이 이번 사태를 "2차 세계대전이후 인류가 맞는 가장 심각한 위기"라 규정하는 것을 접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상황은 어쩌면 그 전에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세계사적 재앙임에 틀림없고 여전히 이 사태의 끝은 요원하기만 하다. 피해규모를 떠나 코로나사태의 전과 후, 우리 모두의 삶이 더 이상 닮은꼴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코로나사태와 더불어 요사이 온 국민의 관심과 공분을 야기한 또 하나의 사건은 속칭 "텔레그램 N번방"사건이다. 수백만의 국민이 관련된 범인들을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연일 화젯거리다. 좀 전의 뉴스에서는 현재 누적 청원인 600만을 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한다. 인터넷이라곤 메일 확인정도의 효용성을 담보하고 있는 나에게는 이 코로나 와중에 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점도 경이롭고, 사건을 소개하는 앵커들의 극단적인 표현들도 낯설어 보인다. 외설적인 야동과 무엇보다도 미성년자들의 성 착취 동영상들이 이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야기한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 사건이 해당 청원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이 젊은이의 예외적인 범죄처럼 치부하는 것은, 별별 이유로 익명이 판치는 SNS(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고 숭상해온 우리 모두의 책임을 방기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별별 이유에는, 사회적 관계망을 통한 신산업 고양의 경제적 논리도, 민의의 자유롭고 즉각적인 표출을 내세우는 정치적 논리도 또 인스턴트 지식의 공유를 통한 인간의식의 함양등도 포함되리라. 그러나 반면에 그 동안 이러한 익명의 인터넷공간에서 펼쳐진 극단적인 진영의 대립이나 개인들의 소위 "신상 털기", 수많은 도색사이트들의 창궐들을 익히 들어온 우리들이 이번 "N번방"사건을 예외적인 반사회자(Sociopath)의 범행으로 치부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계하여 자연생태계를 파괴해온 우리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동일한 비겁함의 발로일 뿐이다. 상식적인 도덕과 윤리보다는 점수 따기 교육, "8할"이 "인간미" 넘치는 조폭들이 주연인 우리의 영화, 8할이 남들의 생활 엿보기에 할애된 우리의 TV... 이런 판에 이번 사건의 주범 같은 괴물은 코로나바이러스만치나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동안 학대받은 자연이 인간에게 내미는 최초의 "청구서"라면 "N번방"사건은 익명의 바다에서 유유자적했던 우리 모두에게 내미는 일종의 "분담금"이다.

선거가 3주뿐이 안 남았지만, 정치인들의 코미디는 날로 흥미진진하다. 각 정당의 이름은 서로 서로 비슷해서 어디가 여당이고 어디가 야당인지도 모르겠고 선거용지의 한 계단 올라가자고 국회의원들을 호기 있게 여기저기 꿔 준 단단다. 설마 국민들이 누군지 보지도 않고 투표용지 앞부분을 찍는다는 "기발"한 생각에서는 아니겠지? 이게 비례대표의원 선출제도를 개정하고 몇 달 후에 시행하는 선거의 "웃픈"모습이다. 이럴 바에는 요즘 모든 게 청와대 청원으로 통하는 모양인데, 앞으로는 국회의원 뽑지 말고 그냥 입법도 이 통로를 고려해 봄직하다.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