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꼼수 주고받으며 최악 공천 선보여… 진정한 반성 없이 성의 없는 유감 표명만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정치권이 오랜만에 힘을 모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례대표 공천`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특정정파 한 쪽만의 잘못으로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자신의 과실은 외면한 채 상대의 흠결을 더 들춰내는 방법으로 내가 최악만 아닌 것처럼 포장하면 된다는 정치공학적 셈법만을 믿고, 진흙탕 싸움을 거듭해온 결과다. 선거를 목전에 둔 시기였음에도 그들에게 민심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이후 후보등록 당일까지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파국의 연속이다.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통과당시 예고했던대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그 과정에서 법 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난여론에는 아예 귀를 막았다. 준연동형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했다거나, 부당한 입법절차였다는 주장만으로는 그들의 거침없는 꼼수 행태를 정당화할 수 없다.

집권여당이자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은 더 무겁다. 통합당만의 일탈(?)로 제한적일 수 있었던 위성정당 논란이 여의도 모든 정파에 급속도로 확산된 발화점이 민주당의 `말 바꾸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성정당 창당을 `민주 정치를 후퇴시키는 꼼수`로 규정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따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달초 `원내 1당 시나리오`라는 취지로 위성정당 참여를 공식화했다. 그나마 초기에는 구차할 지라도 `군소정당에 대한 지원`, `플랫폼정당의 독립성` 등의 명분을 앞세우는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논의가 진척돼 창당작업이 구체화될수록 몰염치해졌다. 기존 시민사회원로들이 주도했던 플랫폼을 배척하고, 다루기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신생 군소정당만 참여시킨 채 비례정당을 출범시켰다. 후보추천 및 공천과정에선 민주당이 직접 관여한 흔적이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당내에서조차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정당을 끌어들인 사실상의 위성정당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겠는가. 급기야 후보등록 첫 날인 26일까지도 정당 투표용지의 순번을 끌어올리고, 기왕이면 선거보조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아무런 명분도 없이 공개적으로 `위성정당 몸집 불리기`에만 골몰하는 행태를 보이며, 기나긴 비례대표 공천작업의 흑역사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나쁜 기운은 다른 정파에도 곧장 마수를 뻗쳤고, 폐해는 점점 더 극심해졌다. 민생당에선 지도부 중 상당수가 비례대표로 나서려 해 `심판`이 `선수`로 뛰려한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으며, 정치원로인 서청원(우리공화당)·손학규(민생당) 전 의원의 등판도 가시화되는 형국이다. 안철수 전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 역시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문한 이태규 의원을 또 다시 전체 2번에 올리는 파격을 서슴지않고 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더 당황스러운 것은 여야 지도부의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책임이 크다 할 원내1·2당 지도부에선 그 누구도 아직까지 공식적 사과 없이 `유감(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데, 이를 진정한 `반성`으로 받아들일 국민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성정당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정의당에서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비판했던 거대 양당들의 모습을 닮아간 것을 반성한다(장혜영 청년선대본부장)"거나 "비례대표 위성 정당의 출현을 막지 못했다. 정의당은 공당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강민진 대변인)"고 사과했을 뿐이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국민은 몰라도 된다`던 어느 정치인의 언급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정당투표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을 포함해 수많은 정당들이 등장했고, 명칭 또한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주권자들이 선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정치가 우리 삶과 생활에 깊이 관여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무시한 정파에겐 가혹한 심판이 뒤따른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송충원 서울지사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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