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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음악가의 위용(偉容)

2020-03-27기사 편집 2020-03-27 07: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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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상희 피아니스트
삼엄한 코로나 기류를 뚫고 내한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모든 공연이 취소되는 요즘, 이 피아니스트의 공연 소식에 반가움과 우려가 동시에 일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바로 우크라이나 태생의 미국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47). 공연 확정에 대한 기사에는 '한국의 투명한 방역 시스템을 믿고, 한국인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는 인터뷰가 실렸다.

리시차는 4살에 독주회를 열 만큼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전문 연주가로서 점차 연주 활동이 뜸해지고 앞길이 막막하다고 느껴, 한 때 전화 교환원으로 직업을 전환도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2007년 24개의 쇼팽 에튀드 전곡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그녀를 세계 스타로 만들어줬다. 클래식 스타들이 이른 나이에 이름을 날리는 것에 비하면, 꽤 늦게 주목을 받은 셈이다. 그 이후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클래식 레이블 데카(Decca)와 전속계약을 맺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화려한 기교와 박진감 넘치는 연주로 클래식 팬덤을 형성하며 '피아노의 검투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관객들은 이 피아니스트의 용기에 감사와 지지를 보냈다. 2500석 공연장에 900여 명이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엄중한 분위기를 헤치고 모여들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무대 위의 리시차 역시 마스크를 낀 채로 등장했다. 강인한 힘과 카리스마가 상징인 그녀가 연주 도중 오열을 했다. 키예프에 홀로 계신 노모 생각, 마스크를 쓴 관객의 모습, 그리고 본인도 느꼈을 불안과 공포가 감정을 일렁이게 만들었을 터. 모두가 마스크를 쓴 이 진풍경은 사실 기괴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감정을 추스른 후 그녀는 많은 앙코르 곡으로 관객에게 보답을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과 감사를 느낀다는 리시차. 음악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 위로를 전할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 준 그녀에게서 어떤 위용을 느낀다. 독주회 부제였던 '격정과 환희'는 그날의 풍경과 현실이 교차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박상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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