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서덜랜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460쪽/ 2만 2000원

오웰의 코
오웰의 코
영화 기생충은 냄새로 계급과 신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프로이트주의자들은 문명이란, 호모 사피엔스가 코와 배설물 사이에 두는 거리라고 했다. 냄새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계급성을 압축한다는 점에서 힘을 과시한다. "노동자 계급은 땀에 흠뻑 젖고, 신사들은 땀이 맺히고, 숙녀들은 상기된다"는 표현은 냄새가 사회와 계급에서 어떻게 이용되는 지 보여준다.

이 책은 건초열을 앓고 후각을 잃은 저자가 `냄새`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던 영국 소설가인 조지 오웰(1903-1950)을 좇으며 그의 삶의 코를 찌르는 랜드마크들을 하나하나씩 밝힌다. 존 서덜랜드는 표백된 글과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 냄새와 개인성을 복원함으로써 조지 오웰을 다시 읽게 한다.

많은 문학가들의 생은 종료와 동시에 철저한 소독 작업을 거쳐 청결하게 보존되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오웰의 잘 덮인 발자취를 헤집어 나가는 존 서덜랜드의 독특한 평전은 많은 오웰의 팬과 독자에게 낯선 고통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쓰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쓰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지 않은 그대로 써내린 오웰을 상기해 본다면, (악취를 포함한) 냄새를 포착하고 주목하는 독파는 오웰을 읽는 가장 알맞은 태도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삶과 작품에 서린 독특한 냄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냄새나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은 한 소설가의 깨끗한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오웰은 감별력이 각별히 뛰어난 후각을 타고 났다. 그는 어떤 향이든 그 원료를 명확히 서술하고 구별해 내는 비글의 희귀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웰은 경찰을 그만둔 후 재산을 절도당한 뒤 단시간 내에 하층민이 된다. 그는 반기듯 가난을 맞아 가난을 이해하기로 결심하고 일련의 하층민들과 마주치고 기아 직전까지 갔다.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던 경험 등을 담아 식욕을 달아나게 만드는 이야기집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93)을 발표한 것도 이때다.

영국 사회는 콧대 높은 사람들부터 씻지 않는 대중까지 위계 질서에 따라 배열돼있었고 오웰에게 계층이란 무엇보다 냄새의 문제였다.

오웰은 끔찍한 학교 묘사를 다룬 소설 `그토록, 그토록 큰 기쁨`에서 읽은 사람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악취에 관한 구절을 내보인다. 그 구절에서는 세인트시프리언스에서 학생들이 매일 견뎌야 했던 목욕이라는 시련이 다뤄진다.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전신 목욕탕의 점액질 물", "치즈 냄새를 풍기던 늘 축축한 수건"이다. 그 외에도 "삶은 양배추와 오래된 누더기 발판 냄새"(1984 중), "매트로 역 특유의 달큰한 냄새, 조각난 담배"(고래 안에서 중)에서 냄새는 오웰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쁜 냄새를 풍기는 것보다 나쁜 것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다양하고 온전한 냄새가 나기 힘든 전체주의 사회와 시대를 경계했던 오웰의 삶 전반을 훑어 내려간 저자는 물음을 던진다. "21세기인 지금, 오웰의 후각이 우리의 공기를 감지해 줄 수 있다면, 이 세계는 어떤 냄새를 풍길 것인가?"라고.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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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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