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지난해 12월 처음 발현된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급기야 4개월 만에 팬데믹(pandemic), 즉 전세계적 감염병 유행을 불러일으키게 됐다.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의 유행이 결국 중세사회 해체와 르네상스 사회 출현을 가져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 역시 차이는 있을지언정 막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페스트의 팬데믹은 상하수도 시스템과 같은 도시 기반시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채 이뤄진 중세 유럽 도시의 급속 성장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무역거래 활성화로 인한 인적 교류 확대와 로마제국 시대와 다른 목욕 기피 문화도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감염병 유행에는 공간의 밀집화와 기반시설 미비, 접촉 기회의 확대, 위생 개념의 부족 같은 요인들이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코로나19 역시 이러한 감염병의 공식에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사회적 격리라는 처방은 백신이 없는 현재 상태에서 최소한의 방역 조처인데 이 때문에 현재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 생활의 양태를 바꾸고 있다.

이즈음에서 공간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공간의 밀집은 자본의 축적, 사회적 교류 확대 등 현재까지는 매우 유익한 영향을 가져왔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러한 관점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도시의 해체, 중세 성곽도시로의 회귀, 혹은 사회적 관계는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도시공간의 철저한 개인화가 지향점이 될 수는 없고 될 수도 없다. 사회적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인 활동을 아쉬워하고 온라인적 활동은 피곤해 하고 있다. 인간이 요구하는 개인·문화적 공간의 수준과 범위, 주변 공간과 상호 관계 등을 연구하는 `근접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근접학은 건축공간의 규모 설정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인간은 0.45m까지를 친밀한 거리, 0.45-1.2m를 개인적 거리, 1.2-3m를 사회적 거리, 그리고 3m 이상을 공적 거리로 인식한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비누 방울과 같은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있다. 심리적 `개인공간`이라고 한다. 타인으로 인해 개인공간 범위가 왜곡될 때 인간은 `과밀`을 경험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다만 이러한 심리적 거리와 개인공간의 크기는 문화권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방역을 위한 기본적 거리 개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의 거리 2m는 개인 방역의 최소 범위를 기준하는 것이지만 묘하게도 근접학에서의 사회적 거리와도 겹치는 느낌이다. 팬데믹 시기에 인간사회의 기본적 접촉을 배제하지 못하나 상호 안전을 위한 개인공간 존중의 의미도 같이 담겨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우리 사회의 공간들은 어떻게 재평가되고 재구성되어야 할까. 그것은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앞세워 과도하게 밀집시켜 왔던 도시공간의 밀도를 완화시키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과밀이 물리적 개념으로 고밀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밀도 사회가 심리적 과밀을 야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대인류에 건강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필수요인이다. 육체적 건강과 심리적 건강은 서로 조화되어야 하고 비용의 지불은 필수적이다. 지대(地代) 상승은 필연적으로 대지의 효율적 사용을 요구하지만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에서 타협돼야 한다. 한마디로 고층 고밀도의 도시 공간은 우리의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저층 단독주택 마을이 다가구나 다세대 주택촌이 되고 고층 고밀도 아파트 단지가 되었을 때 부동산적 이익은 오르고 이전과 다른 편익은 얻었겠지만 아무도 모르는 새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아름다운 건축은 건강한 건축이어야 하고 그 첫걸음은 적절한 밀도 속의 개인공간 확보로부터 시작된다.

한동욱(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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