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 ETRI 책임연구원
신성식 ETRI 책임연구원
제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샴페인 병은 `샴페인의 꽃`으로 불리는 페리에 주에(Perrier-Jouet)의 벨에뽀끄(Belle Epoque)입니다. 불어 벨에뽀끄는 `아름다운 시대`란 의미로, 19세기 말부터 1차세계대전 전까지의 풍요와 평화의 시기를 뜻합니다. 1902년 유리공예가 에밀 갈레(Emile Galle)가 아네모네 꽃을 아라베스크풍 아르누보 형식으로 디자인한 것을 뒤늦게 발굴해서, 1964년 빈티지에 입혀 1969년에야 출시되었습니다.

페리에-주에는 1811년 삐에르-니꼴라 페리에가 결혼 직후 부부의 이름으로 창립하여, 샴페인의 수도인 에뻬르네의 샹파뉴 대로에 위치한 모에샹동 바로 옆에 자리잡았습니다. 하우스 지하 에덴 셀러에는 샤를르 10세 대관식에 사용되었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1825년 빈티지 샴페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들 샤를르 페리에는 1856년 영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최초로 달지 않은 브뤼(Brut) 스타일을 출시하여 샴페인의 역사에 남을 기록도 남겼습니다. 빅토리아여왕과 나폴레옹 3세가 즐겨 마셨고,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좋아해서 1970년부터 자선행사 발들라로즈(Bal de la Rose, 장미 무도회) 공식 샴페인으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페리에-주에 하우스 매장에 진열된 샴페인 박스들이 주로 연두색 톤을 기본으로 디자인되었고 마당에 세워진 클래식카에 적힌 글자도 녹색, 심지어는 매장 입구의 깔개까지 청록색이었습니다. 궁금해서 확인하니, 요즘 대세인 유기농으로 재배한 점을 강조하는 발상에서 녹색을 사용했다는군요. 작년 8월에 페리에-주에 200주년 기념이 되는 벨에뽀끄 2011을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2시간여 끊임없이 힘차게 솟아올라서 마치 날치알처럼 퍼져나가는 기포가 기억에 남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콜레라 등 전염병이 돌 때 예방차원에서 물 대신 와인을 음용했었다고 하는데, 이번 코로나19의 창궐로 프랑스 정부가 최근 상점 휴업령을 내리면서도 와인매장은 빵가게와 마찬가지로 예외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와인매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되도록 6/12병 단위의 `생존 와인 패키지` 배달 서비스도 도입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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