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한빛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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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디자인은 미술로부터 분화됐다. 미술이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창조활동이라면 디자인은 그에 더해 삶의 편의를 제공하는 창조활동이다.

디자인은 순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첫째, 정보와 지식을 시각적으로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시각디자인(visual design). 둘째, 인간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도록 도구나 장비를 개선, 개발하는 제품디자인(product design). 셋째, 쾌적하고 유용한 환경이나 공간 또는 시설을 도모하는 환경디자인(environment design)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디자인은 여타 예술과 달리 항상 사용자를 기저(基底)에 두고 고민한다. 2014년 8월,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남에 있는 한 성당에서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며 우리의 대화가 상대방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독백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디자인은 단지 고지하는 상태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교황이 주장한 것처럼 디자인은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존재 가치가 인정된다.

시각디자인에서는 교통 표지판이나 지도와 같이 정확히 알리는 것만으로도 그 기능을 다하는 매체가 있지만 대개 시각디자인 매체들은 대중을 설득하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설득이란 항상 감동을 담보로 하는데 설득의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감동은 디자이너의 풍부한 통찰력 직관, 상상력을 통해 가능하다.

디자인에서 표현은 혼자만의 골똘한 생각에 잠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시각적 표현은 전달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꼭 들려야 한다.

그러므로 표현은 혼자 중얼거리는 독백일 수 없다. 그렇다고 표현은 크게 외쳐야만 들리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은 작은 소리조차도 충분히 크게 들리게끔 할 수 있다.

디자인의 표현은 불특정 다수인 대중이 감복할 정도로 절로 감동이 느껴지게 할 만한 설득력이 필요하다. 만일 디자이너가 객관에 치우치면 진부한 결과가 되고 주관에 치우치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

대중과 호흡하는 디자인을 탄생시켜야 한다. 대중의 공통된 감각을 꿰뚫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외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홀로 자신과 싸운다. 디자인은 독백이 아니다.

나를 놀라게 하라(Surprise me). 오랜 기간 동안 디자인 일을 하면서 팀원들에게 자주 강조했던 말이다. `여러분들은 디자인으로 누군가를 감동시키려 하는가. 그렇다면 나부터 놀라게 하라`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책임지고 있는 날 놀라게 하지 못한 다면 과연 여러분의 디자인은 어느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책이다.

여기서 `나(Me)`란 책임자인 본인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선 그 디자인을 생산해낸 디자이너 본인일 수도 있다. 이후 그 디자인을 승인할 클라이언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 디자인이 그것에 대해 최상의 이해도를 갖추고 있으며 가장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놀랄 만큼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그 디자인의 효용성은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어떤 디자인을 진행하는 가운데 문득 좋은 아이디어나 좋은 디자인에 이르게 되면 굳이 어느 누구에게 묻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먼저 그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제 됐다`는 놀라움으로, 놀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디자이너가 먼저 놀랄 수 있어야 대중도 놀랄 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먼저 나를 놀라게 하라.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지만 이를 엮어 꽃다발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 괴테의 말처럼 디자인도 절실함으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디자인도 대중을 유인하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 하며 이윤 창출이라는 최종 목표를 이룬다.

꽃의 절실함과 디자인의 절실함이 닮았다. 디자이너는 대중의 설득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매순간 주관과 객관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성춘 한빛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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