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이정철 지음/ 푸른역사/ 376쪽/ 1만 8000원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
조선의 기록의 나라였다. 왕조와 국가 운영에 관한 촘촘한 기록들은 조선을 지탱한 국가적 시스템이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이를 웅변한다. 당연히 이런 `국가 기록`들은 역사학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된다. 한데 이것들만으로는 역사를 제대로 그리는 데 한계가 있다. 거대사·제도사 속에 묻혀 있던 개인의 가치, 일상의 삶을 입체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미시사, 생활사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기록의 나라답게 조선의 유학자들은 숱한 일기를 남겼다. 생활일기는 물론 서원을 세우는 영건일기, 관직일기, 여행·전쟁 일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심지어 유배일기도 있다. 민간 소장 기록유산을 수집, 보존하는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는 대략 3000점 정도의 일기류가 보존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DB 구축과 번역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창작 소재로 2차 가공한 `스토리테마파크(story.ugyo.net)`를 서비스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이 작업들에 참여했던 이들이 그 중 20권의 일기에서 `조선의 일상`을 길어낸 것이다.

조선 사람들의 `육성`을 통해 역사책이 놓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옛사람들의 지혜에 놀라고, `예나 지금이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된다. 한마디로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달달 외우던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 숨쉬는` 흥미로운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책은 일기가 다룬 소재에 따라 국가·공동체·개인 3부로 나뉜다. 이 중 1부 조선이라는 `국가`에 살았던 사람들을 보면 조선의 탁월하게 정비된 제도에 놀랄 만한 내용이 여럿 실렸다.

`피혐`이란 게 그렇다(104쪽). 사간원이나 사헌부 등에서 탄핵받은 관리가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대기하는 것을 `피혐`이라 했다. 스스로 물러나 자신에게 혐의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죄인을 가두고 곤장과 같은 중벌을 내릴 때에는 심문관 두 명이 함께 추국하도록 한 `동추`란 제도도 규정돼 있었다(100쪽). 아버지가 시험관이 되는 바람에 300년 만의 기회인 경상도 특별 과거시험에서 응시조차 못하게 된 `상피제` 이야기는 또 어떤가(291쪽).

그런가 하면 가진 자들의 꼼수, 횡포를 꼬집는 이야기도 여럿 나온다. 법으로 향교의 수와 규모를 정해 놓았음에도 유생들이 군역을 피하기 위해 너도나도 향안(향교 학생명부)에 올리는 통에 정원을 20배 넘게 초과하기도 했다(286쪽). 반면 양반들의 등쌀에, 나라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아예 토지를 들어 양반가나 서원에 노비 되기를 청하는 `투탁`이 성행하기도 했다(64쪽). 한 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백성들에게서 국방을 명분으로 곡식을 빼앗은 의량(52쪽), 명나라 모문룡의 가도 주둔비를 충당하려 징수한 당량(219쪽), 왜관 운영 경비로 뜯어낸 특별 세금 왜공(213쪽) 등으로 일반 백성의 허리는 부러질 지경이었다.

3부 조선 사람들의 `개인`으로 살기에는 `역사`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선인들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시집간 딸이 친정을 찾아 한 달 정도 머무는 `근친`, 이것이 어려울 경우 안사돈들이 동반해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 `반보기`는 생활사의 좋은 예이다(243쪽).

60여 꼭지의 글은 하나하나 여느 역사책에서 보기 힘든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하루 12시간 근무하되 연 70일을 쉬었다든가(325쪽), 청나라에 잡혀 갔다 왔다는 이유로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환향녀 이야기(55쪽) 등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일기에서 골라낸 이야기답게 모든 글에는 사람이 중심이다. 생생할 수밖에 없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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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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