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한국천주교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체가 드리는 미사를 중단했다. 박해와 전쟁 중에도 순교를 각오하고 미사를 봉헌했는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총칼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나와 함께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공동체미사는 중단했지만, 힘든 세상을 위해 매일 개인미사를 드리면서 나름 밥값을 하려 노력중이다. 돌아보면, 2011년 일본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가 있을 때 우상숭배와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내린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2020년 1월 이후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데, 이 환란을 믿음으로 이기자며 종교행사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를 질문하며, 역사적으로 흑사병이 창궐하던 때를 생각해 본다.

14세기 중반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페스트균이 전염되면서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흑사병은 공포 그 자체였다. 사제들은 환자를 방문하고 기도를 하다가 거의 2분의 1이 피해를 입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다 원인까지 정확히 몰랐기에 갖는 공포감은 엄청났다. 이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었다. 신이 인간의 죄를 벌했으므로 사람들은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극단적인 방법으로 회개를 강조하는 `채찍 고행단`이 여기저기에 생겨났다. 이들은 알몸으로 십자가를 들고 성가를 부르며,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치면서 마을을 돌아다녔다. 또한 신이 진노한 이유가 유다인, 집시, 매춘부 등 소위 나쁜 사람들 때문이라는 혐오가 만연해 갔다. 죽음에 대한 집단적인 공포가 무분별한 광기로 돌변한 사회가 된 것이다.

더불어 일상의 교회 모습으로 돌아가 나눈 이웃사랑도 이어졌다. 가톨릭교회는 일찍부터 예수님을 본받아 아픈 사람들의 질병치료에 관심을 기울였고, 베네딕토 수도회의 꾸준한 의술연구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흑사병이 퍼져가자 안타깝게 여긴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성령병원`을 세웠고, 이를 모델로 그리스도교 국가에 자선병원들이 속속 세워졌다. 기적에 의지하고 기도에 매달리는 경향도 있었지만, 교회는 약물처치 등의 치료를 적극 받아들이며 의술발전에 기여했다. 마침내 17세기에 키에커(Kiecher) 신부는 흑사병이 미생물로부터 발생한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하며 전염병 치료의 길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중세교회가 빠졌던 혐오를 극복하고 이웃사랑의 성숙한 자세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사이비 종교의 거짓을 지적하는 것은 혐오와 다르겠지만, 이웃국가 혐오와 사재기가 횡행하고 가짜뉴스가 나돌며, 위기상황을 선거에 이용하려 분열을 야기하는 뻔뻔한 정치인들과 언론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의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에 대한 성찰보다는 바이러스를 신의 심판으로 해석한 듯 어딘가에서 희생양을 찾으려는 광기어린 눈빛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자기 자리에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방역과 치료를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마스크를 살 시간이 없는 택배기사를 위해 마스크를 나눈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도 감동스럽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예수님 말씀대로, 지금 내 작은 일상이 이웃을 살리고 사랑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사랑의 바이러스만이 두려움을 이길 테니까.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