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서산시청 사회복지과에 한 노인이 방문 했다.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낀 이 노인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80세 노인이라고 밝힌 그의 손에 든 검은 봉지에는 5만 원권과 만 원짜리 지폐 수십 장, 여기에 동전도 꽤나 많았다.

그리고 한 장의 편지.

그가 서산시를 찾은 이유가 이 한 장의 편지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는 대구시청 관계자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대구시민과 공무원, 의료진, 봉사자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 또 감사를 드린다"며 "저의 조그마한 성금이라도 꼭 필요한 가정에 사용 됐으면…. 대구시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우리가 남입니까".

그는 검은 봉지에 든 현금과 동전 등 모두 98만 원을 기탁하고, 부디 익명으로 해달라는 말을 남긴 채 돌아섰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탓에 그 노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게 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며칠 뒤 이 노인은 100만 원의 현금을 추가로 들고 와 두 번째 편지와 함께 기탁했다.

이 100만 원은 대대로 물려받은 조모의 금반지를 팔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얼마 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 성금 창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신다면 보람도 있고, 어려운 현실 극복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여러분도 동참하시면…"이라고 편지로 동참을 호소했다.

이 노인이 다녀간 뒤 며칠 지나 80대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모 할머니가 사회복지과를 찾았다.

김 할머니는 코로나19 예방에 써 달라며 300만 원의 큰돈을 내놨다.

300만 원은 김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의 일부를 매월 저축해 모았다는 것.

자신이 지난해 7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심장병 수술비 300만 원을 지원받은 만큼 이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월 일부 금액을 떼 모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가 삼켜버린 시간 속에서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두 노인의 기부 소식은 큰 울림을 남겼다.

코로나19가 비록 우리에게 벅찬 역경이지만 어찌 보면 두 노인에게 `노마지지((老馬之智)`가 투영, 코로나19를 극복할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어려울 때 더 빛나는 그 한마디 `우리가 남입니까`를 곱씹는다.

박계교 지방부 서산주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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