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문승현 기자
취재2부 문승현 기자
우리 여기서 먼 데로 가세./ 갈 수 없네./ 왜 못 가?/ 내일 돌아와야 하네./ 무엇 때문에?/ 고도를 기다리러./ 아! (침묵) 아직 오지 않았나?/ 안 왔네./ 이제 너무 늦었는걸./ 그래, 지금은 밤이야.

이 날 좋은 봄날에 사뮈엘 베케트의 황량한 벌판 같은 희곡 `고도(Godot)를 기다리며`를 다시 꺼내 읽는다. 대학시절 읽는 둥 마는 둥했던 기억뿐인 이 책이 불현듯 떠오른 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기다림`의 미장센 때문이다. 등장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시종여일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의 전령인 소년은 "고도 선생님이 오늘 저녁엔 못 오셔도 내일은 꼭 오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라거나 "그이는 오늘 저녁에 안 오지. 그러나 내일은 오지"하고 묻는 블라디미르에게 "예"하고 답하고 있지만 누구도 고도의 왕림을 기대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50년 동안 계속돼 왔고 때로 그의 이름이 고도가 맞는지, 기다려야 할 곳이 나무 옆이기는 한 건지, 정말 온다고는 했는지 온통 회의(懷疑)의 연속일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무서운 혼란 가운데서도 우리는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즉, 기다려야 한다는 테제(These)의 감옥 그 하나다. 세밑 한파가 들이닥친 지난해 마지막 날 중국 우한에서 폐렴환자가 보고되고 올 1월 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나왔다. 그러려니 했던 것이 2월 18일 대구에서 발생한 확진자를 변곡점으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했다. 9일 0시 현재 전국 확진자가 7300명을 훌쩍 넘겼다. 온 나라가 코로나 패닉에 빠졌다.

평범한 일상은 50일째 올스톱이다. 아이들은 감염 우려로 가택연금돼 있고 학사일정은 중단됐으며 상인들은 그로기 상태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시계제로 깜깜이 선거로 흘러가고 기업은 생산과 투자를 망설인다. 성큼 봄은 다가와 있는데 코로나19가 만든 겨울 속에 갇혀있다. 소년의 전갈만으로 존재와 의미를 추론하는 고도는 여전히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다양한 해석이 허용되는 희곡의 세계에서 안온한 일상의 회복으로 고도가 현현(顯現)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 취재2부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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