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롱문화가 유행이다. 20-3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시작되더니 그 트렌드가 40대를 넘어 신중년 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업무에 지친 자신을 위로해주던 동료들과의 잦은 술자리가 사라지고 직장을 벗어나 공통된 관심과 취미를 추구하는 살롱 모임이 득세하고 있다.

과거 성실한 직장생활을 통해 성취감도 느끼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지시받고 하는 수동적인 일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구축해나가기는 불가능하다. 워라밸을 내세우는 직장문화도 이미 개인주의 위력 앞에 항복한 셈이다. 사무실 울타리를 벗어나 또 다른 사회관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동창회, 향우회, 사우회 등 학연, 지연에 따라 만들어진 모임도 진정한 자아 추구의 절실함 앞에선 시들해졌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디자인하는 자기주도형 모임이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의 장이 되고 있다.

북클럽, 와인시음회, 보드게임, 등산모임, 일기쓰기, 요리하기, 영화감상, 전시회관람, 재즈감상 등 다양한 관심과 취미를 공유하는 오프라인 만남이`살롱`이다. 개인 취향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를 목적으로 결성된 살롱들은 온라인 상의 디지털플랫폼에 의해 큐레이션 되기 때문에 살롱 가입을 원하는 개인의 성향, 가용한 시간 및 장소에 따라 특정 살롱 선택을 용이하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롱문화의 가장 큰 매력은 살롱의 콘텐츠 자체보다 그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에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 사람들은 과잉의 정보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관계, 자기 발전, 공감능력, 집단 지성과 같은 정신적 능력을 갈구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이모티콘을 보내지만 참다운 사회적 소통에 대한 갈증은 더욱 증폭된다. 살롱의 회원들은 공통의 취미나 취향에 기반한 특정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그들의 목적은 그 콘텐츠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경험의 획득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대화와 대화의 방식이 핵심이다. 업무나 과제가 아니라 타인의 문화적 경험이나 취향이기에 결과보다 그 경험 과정에 얽힌 스토리를 경청하다보면 지루한 줄 모른다. 나와는 다르게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존중되고 때로는 성공보다 아쉽게 놓친 기회가 더 오랜 울림을 주기도 한다. 살롱의 대화는 상이한 가능성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줌으로써 자아 확장의 계기를 제공한다. 살롱문화가 소셜미디어를 대체할 순 없다. 그렇지만 눈을 마주치며, 오감을 활용해서 대화하는 가운데 좀 충만하고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셜미디어의 포스팅이나 자아도취적 인플루언서를 추종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사회화 경험이 살롱문화의 성장 동력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다른 가치를 내세운다고 해서`안티`가 되어 집단으로 공격한다. 살롱의 대화에는 싸움이 없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감의 감수성을 통해 차이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한다.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교육, 성공만이 유일한 가치로 강요된 사회생활 그리고 넉넉한 자산에 기댄 안정된 노후가 우리 삶의 사회화 모델이었다. 타인은 경쟁의 대상일 뿐이고 내편이 아니면 경계해야할 적이었다. 젠더의 차이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내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상이한 가치들은 타자화된다. 다양한 차이를 지닌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공동체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면 사회적 신뢰도 무너진다. 이 시대의 살롱문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려는 사회 저변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17, 18세기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살롱문화도 문학, 예술의 영역을 넘어 시민부르주아의 공론장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공유플랫폼으로서의 살롱문화 발전에 공공 분야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할 이유가 여기 있다. 살롱은 근대 유럽의 전통에서 발현했지만 우리 시대의 살롱은 사회혁신을 위한 사회자본 모델로 발전시킬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박동천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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