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지난달 중순부터 `코로나19`가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다시 확산세로 돌아섰다. 요며칠 확진자 수가 대폭으로 증가하면서 병상수급이 어렵다는 뉴스가 계속 나왔고, 세계 70여 개국에서는 한국발 비행기에 대한 제한조치가 내려졌다. 언뜻 본다면, 지난 1월 국내 뉴스로 전해지던 중국 우한의 상황과 닮아 보일 수도 있겠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마스크가 동이 난 것을 제외하고, 나와 내 주변은 여느 때처럼 안정적이다. 사재기가 있을 것이란 것과 달리 사람들은 필요한 것만 구매했고, 슈퍼 진열대의 물건은 항시 쌓여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불편함과 혹시나 전염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있지만, 이 난국이 조기에 종식될 수 있는 희망에 몸과 마음을 다해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읽은 독일 슈피겔지의 한국 코로나 상황에 관한 기사는 이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슈피겔은 한국 감염자 수의 폭증은 한국의 뛰어난 진단능력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언론과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적 바이러스 대 유행이 보건체계뿐만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의 자유를 시험에 들게 했으며, 한국이 그 시험을 건강히 통과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최근 페이스북 SNS를 중심으로 `책 표지 챌린지`가 진행 중이다. 팔로잉한 친구, 일명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추천을 받아 7일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표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에 대한 설명 대신 표지 이미지만 올리고 하루 한 명의 다른 친구에게 챌린지 동참을 권유하는 일이다. 올라오는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면서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상기할 기회도 되었고, 시간이 된다면 읽어 봐야겠다고 다짐한 책들도 있었다. 타인의 서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가 가진 삶과 기억과 사유와 철학을 엿보는 것인 만큼 그것을 공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인데, 이렇게 몇 권의 책을 표지만 공개하는 일은 부담스럽지도 않을뿐더러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기회도 될 듯해서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유행병을 조기에 종식하는 방법이라고 해서 주말은 아이들과 집에만 머물렀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보내온 안전안내 문자를 받아 들고 `책 표지 챌린지`에 올릴 책을 한 권 생각해 냈다.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비극 `역병 속의 향연`이다. `역병 속의 향연`은 1830년에 쓰인 작가의 몇 안 되는 희곡 가운데 하나로, `윌슨(Wilson John, 1785-1854)의 역병의 도시로부터`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윌슨은 1816년 영국 런던에서 1665년 창궐한 역병을 소재로 작품을 창작하였고, 푸쉬킨이 `역병 속의 향연`을 창작할 당시 러시아는 콜레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작가 개인적으로는 지방도시 볼디노에 머물고 있어 모스크바에 있던 약혼녀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를 만날 수 없는 것이 가장 답답하고 암울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예브게니 오네긴`을 비롯해 `모차르트 살리에리`, `석상 손님` 등 여러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창작 발표했던 해도 1830년이었다. 물론 `역병 속의 향연`도 그 맥락 위에 있다.

`역병 속의 향연`에는 전염병이 도는 도시를 바라보는 윌싱엄과 사제의 상반된 시선이 대립한다.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은 몇 명의 남녀 가운데 한 명인 윌싱엄은 도시를 뒤덮은 죽음의 그림자를 장난스러운 겨울여자라고 비유하며 파멸의 위협 속에서도 인간이 심장 안에 숨겨진 즐거움을 찾아내 술잔을 들어 향연을 준비하자고 노래를 부른다. 반면, 사제는 죽음이 가득한 암흑 속의 고요를 뒤흔든 향연을 신성모독의 행위라고 비난하며 무거운 한숨 소리 가운데 필요한 것은 신성한 기도뿐이라고 윌싱엄을 비난한다. 죽음 앞에서의 겸허함을 강요한 사제의 요구와 달리, 윌싱엄이 노래한 것은 죽음의 향연이 아닌 끝까지 남겨둬야 할 삶에 대한 열정이었을 것이다.

슈퍼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며 몇 개 집어 들었던 맥주와 함께 가족들이 둘러앉아, 윌싱엄과 사제 사이에서 일단 우리는 윌싱엄을 지지하자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집처럼 자체 자가격리하며 코로나19의 종식을 기다리는지, 주말 동안 맞은 편 고층 아파트에 몇 집을 제외하고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창문의 불빛이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나와 가족의 건강과 삶이 걸린 중차대한 전염병의 위험 상황인 것은 틀림없지만, 저 아파트 불빛마다 건강한 향연이 열리는 중일 것이다.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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