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아 개인展 '베일(Veil)'

조난아 VEIL-28. 갤러리라메르 제공
조난아 VEIL-28. 갤러리라메르 제공
지중해에 쏟아지는 에머랄드 빛의 강렬한 햇살. 다채로운 색으로 인식되는 빛의 파장이 조형적인 선과 면으로 담긴다. 화폭에 담긴 그의 시간과 공간을 보자면, 추상주의 회화와 다르지 않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장면이다.

공간의 추억, 시간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사진가 조난아 개인전 `베일(veil)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라메르 2전시실에서 3일까지 열린다.

사진가 조난아는 살포시 가리워진 `베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본 그의 세상은 공간과 색의 배열로 구성된다. 조형들은 상호유기적인 기능을 발휘하며 기하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가 펼쳐놓은 작품들을 보면 주변의 평범한 공간들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그것도 세월의 흔적이 뚜렷한 건축물의 일부분에 주목한 그는 그곳에서 `자유`를 찾는다.

조난아는 "우리들 대부분은 백년도 못 되는 삶을 살지만 천세를 누릴 것처럼 사랑하며 방황하며 자유를 갈망하다 스러진다"며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바람에 밀려 떠돌던 구름이 하늘로 스며드는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세상은 인간이 구사할 수 있는 수 많은 언어로도 해석되지 않고, 세상을 향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며 의미를 찾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조난아가 프레임에 담은 형상을 보면 관람객들은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쉽게 알 수 없다. 어떤 장소, 어느 시간에 그가 주목한 것인지 한 눈에 알 길은 없지만 우리는 그 대상이 갖고 있는 본래의 가치와 성격과 상관없이 작가가 발견한 `그 무엇`에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그 대상은 한 때 화려하게 거리를 장식했거나 눈길을 사로잡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도시 한 귀퉁이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겨졌거나 외면당한다.

작가의 렌즈에서 새롭게 드러난 그 무명의 존재들은 더 이상 낡고 초라하지 않다.

사진가 신경훈은 "조난아 작가의 베일 작품은 봄날 햇볕처럼 따뜻한 감귤색 담장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회색 벽면에 드리운 그림자와 네모난 창문은 도회적 감성을 전해준다"며 "민트색 벽과 하얀 출입문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이 주는 경쾌함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석했다.

조난아 작품 하나하나에는 본래 그들의 물성과 다른, 작가의 시선이 발견해낸 형상들은 우리에게 색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시각 너머 공간의 근원성에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베일` 작품들의 색 배열과 대비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잡는다. 마치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려놓은 듯 정교해 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탁한 무채색과 명징한 푸른색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고, 흰 벽면과 계단의 그림자가 흑백의 추상화를 그려냈다. 흰 건물의 벽과 새파란 하늘은 스페인 남녘의 지중해마을의 풍경을 닮았다. 조 작가는 또한 여러 작품에서 그림자를 탁월하게 이용했다. 적절한 위치에 그림자를 배치해, 사진에 리듬감을 불어 넣었다. 이런 조난아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관찰력의 소유자이고 끈질긴 미적 탐험가인지 알 수 있다. 카메라의 렌즈가 향하지 않을 법한 후미진 곳에서도 예상치 못한 장면을 포착해서 드러내고 있다.

조난아는 "도심 속 빌딩이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을수록 상대적으로 왜소해지는 자아(Ego)의 나약함, 타인의 삶에 무심한 감정의 단절성, 그 속에 건축이 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영혼의 쉼터인 나 만의 숲(Forest)을 찾는다"며 "인간의 삶이 반영된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인생 서랍에 담겨 있는 질량 만큼의 판도라 상자가 개인의 인생만큼 쌓여있다. 켜켜이 누적된 시간의 층위만큼 끊임없는 비밀이야기를 속삭인다. 시간의 기억이자 공간의 추억"이라고 말한다.

사진가 조난아는 작품으로 이름 없는 사물들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벗겨 내고, 그 사물들이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풍경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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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아 VEIL-27. 갤러리라메르 제공
조난아 VEIL-27. 갤러리라메르 제공
조난아 VEIL-17. 갤러리라메르 제공
조난아 VEIL-17. 갤러리라메르 제공
조난아 VEIL-6. 갤러리라메르 제공
조난아 VEIL-6. 갤러리라메르 제공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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