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이제 코로나 19 감염사태의 여파는 다난했던 우리역사의 큰 모멘텀 중에서도 모든 국민에게 가장 큰 우려와 실제적인 피해를 가져온 사건임에 분명하다. 21세기를 살아가며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양 생활해 온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환상들이 신기루에 불과하며, 19란 번호가 암시하듯 이 사태가 다행히 진정되더라도, 20번은 언제일까? 라는 두려움이 이제는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할 것이다.

31번 확진자로부터 시작된 신천지교인들의 다량감염사태는, 불현 듯, 귀국 초기 어느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대전의 밤풍경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칠흑 같은 밤의 장막에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각 교회당들이 서로 경쟁하듯 밝힌 빨간색 네온의 십자가 군무였다. 시민들이 종교에 의지하려는 욕구는 다양한 동기에서 시작될 테고, 어찌 보면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자각과 현실생활의 불안과 불만이 절대자에 귀의하려는 이들 신앙인들의 태도를 설명하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 언론을 통해 접하는 대형교회들의 일탈들은, 적어도 한국교회의 일부는, 종교 단체라기보다는 신앙을 앞세워 아주 손쉬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 교당의 신도수가 몇 십만이라고 자랑하는 대형교회가 비지수이고(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이 루터의 강론을 잘 이해했다면, 진정한 신앙은 절대자와 본인의 교감일 텐데, 목회자가 주재하는 몇 천, 몇 만이 참석하는 대형예배들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동네마다 가장 번뜻한 건물이 교회건물인 점도,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그리스도 가르침에서 약간 벗어난 것 같고, 목회자들의 절대적인 권력도 기독교가 탄생한 서양사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현상이고, 별별 이름의 조직과 행사들을 통해 교인들을 교회 안에 가둬두려는 양태들도 교회가 딱히 해야 될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언론을 장식했던, 인정사정없는 폭력을 하나님의 가르침이란 "타작마당"으로 둔갑시킨 한 여목사의 이야기나, 아들에게 목사자리를 세습시킨 대형교회의 목사, 또 요사이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태극기부대의 영도자라는 한 기독교단체회장 목사들의 이야기는 교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비하면 가십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성직자들의 이러한 일탈들은 결국 신도들, 더 나아가 모든 시민들의 책임이다. 아직도 기복신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종교의 영역에는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신비의 영역으로 미루기 일쑤고, 현실사회보다 더한 파벌을 만들고, 교회가 신앙체험의 극적인 공간이기 보다는 사회적인 고독을 해소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익명의 장소에 불과하다고 체념한다면,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회복되기 요원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단지 프로테스탄트교회 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톨릭교회나 불교, 그 밖의 다른 종교들도 잘못된 토착화나 폐쇄적 운영으로 인해 진솔한 교인들의 질책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를 뒤흔든 가장 큰 두 사건, 전대미문의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미래 행동양식까지 변모시킬 현금의 "코로나19사태"의 언저리에, 공히 기독교라 자처하는 두 그룹이 존재함이 교회로 화살이 향한 이유이다.

코로나 사태를 "마귀의 시험"이라고, 그래서 신앙을 국민적 조롱거리로 놔둘 것인가?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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