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제101주년 3·1절을 앞두고 건국훈장 23명(애국장 9, 애족장 14), 건국포장 14명, 대통령표창 69명 등 106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27일 밝혔다.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5명이다.
3·1운동 직후 비밀 독립운동 단체에 참여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된 김양한 선생에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1920년 1월 서울에서 비밀결사 주비단(籌備團)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공채를 매각해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전남 담양에서 의병에 참여해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한 이강복(李康福) 선생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전주이씨 효령대군의 후예로 을사늑약(1905)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절치부심하다 1907년 담양에서 기삼연(奇三衍)(`62 독립장) 의진에 투신해 같은 해 12월 27일 금성산성(金城山城)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다.
초유의 초등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한 `늦깎이 초등생` 박망아 선생에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8세 때인 1919년 3월 경북 의성군 비안공립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전교생에게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고 학교 뒷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남만주 일대에서 친일파 응징하다 장렬히 순국한 최봉희, 원승보, 최준식, 최학기 선생 등 4인의 용사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이들은 1921년 5월 중국 봉천성 흥경현(興京縣)에서 독립단의 암살대원으로 친일파 김여연(金麗淵) 등을 처단하다 만주보민회(滿洲保民會) 조사반에 체포되어 피살 순국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자는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만 1068명, 건국포장 1331명, 대통령표창 3532명 등 총 1만 5931명(여성 477명)이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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