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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희곡 읽기의 재미

2020-02-28기사 편집 2020-02-28 07: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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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원 극단 백 개 무대 대표 (극작가·배우)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희곡을 읽는 이는 드물다. 그것은 문학이라기보다 공연의 일부로 취급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희곡 읽기를 추천한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관점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하게 달라지듯, 희곡의 인물들 역시 배우들을 만나기 전에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해석의 다양성이 바로 희곡 읽기의 재미가 될 것이다. 그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좋은 고전들이라면 당연히 가진 장점이지만, 그중에서도 연극에서는 체홉을 손꼽는다.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큰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체홉에 나오는 인물들은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당황하면서도 어영부영 그 삶을 쫓아간다.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처럼 '초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영웅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인물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닮은 모습을 자꾸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늘 우울한 표정으로 '내 인생의 상복'이라며 검은 옷만 입는 '갈매기'의 마샤. 주목받는 인생을 살아오다 나이 먹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들의 여자친구를 질투하기도 하는 '갈매기'의 아르까지나.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더 저주하게 되는 '바냐 아저씨'의 소냐. 꿈이 있음에도 그 꿈을 위해 뚜렷하게 하는 일은 없이 말로만 꿈을 떠드는 '세 자매'의 세 자매. 연극에 나오는 특별한 등장인물이기보다는 너무나도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그들은 체홉의 입을 빌려 인생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세상에 질문하고, 때로는 좌절하면서도 주어진 삶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체홉은 연습하는 배우들에게 늘 당부했다고 한다. 연기하지 말고 그냥 살아달라고. 그 말로 체홉의 인물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인생이 수수께끼인 것만 같고 삶이 고단해질 때, 체홉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비극에 빠진 우리 삶도 우리를 닮은 희극 속 인물들을 만난다면, 거기서 사는 재미를 조금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김주원 극단 백 개의 무대 대표 (극작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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