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전국이 코로나19 창궐로 미증유의 상황을 겪고 있다. 감염자 폭증과 지역적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소한 부주의 하나로 방역망이 뚫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럴 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라는 말이 생각난다. 원래 이 말은 어떤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는 세부적인 것이며 대체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막상 구체적으로 해결하려면 예상 외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로 협상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또 사실 그가 직접 언급했는지는 모르지만 현대건축의 4대 거장 중 한 사람인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부고기사에서 그의 발언으로 소개된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는 표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의 명언 `적을수록 풍부하다`(Less is more)와 함께 그의 건축철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명제인 이 말은 건축에 있어서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실제 그의 건축 전반에 걸쳐 구현됐다.

새삼스럽게 이 말을 불러낸 것은 지금처럼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대응조처의 큰 방향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것 못지않게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듯이 건축에서도 디테일은 전체 건축의 수준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도시 풍경을 보면 세계적인 트렌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심지어 멀리서 보면 진품(眞品)이되 가까이 가서 보면 가품(假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디테일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포드(Edward R. Ford)는 그의 저서 `건축의 디테일은 무엇인가?` (The Architectural Detail)에서 건축 디테일의 본질적인 정의를 구하고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간략히 서술해 정의 내린다면 건축의 디테일은 건축자의 건축 의도를 전달하는 최종적 마무리이자 꾸밈새로 규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 수식어 없이 직설적으로 하거나 수식어를 쓰더라도 어떠한 수식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또 어순에 따라 말하는 이의 의도는 각각 매우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건축의 디테일은 이러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별 것 아닌 상세부의 처리가 내가 짓는 건축의 의도를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혹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최근 4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쥠으로써 세계적으로 우리 영화의 수준을 널리 알린 봉준호 감독의 별명이 `봉테일`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의 디테일에 대한 관심이 그의 영화적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의 영화적 경지를 그토록 지극한 수준까지 올린 것이지 않을까 한다.

한편으로 디테일의 적용은 그냥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디테일을 어느 수준으로 사용할 것이냐 하는 철학적 판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어떠한 디테일을 사용할 것이냐 하는 양식적(樣式的) 판단이 있어야 하며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들이 따른다. 그러므로 디테일은 건축자의 양식과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이 훌륭하다고 반드시 값비싼 건축물이지는 않으며 값비싼 건축물이라고 디테일이 반드시 훌륭하지도 않다. 최근 국가적으로 건축정책을 보다 진일보된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고 건축가들은 이미 일찍부터 건축의 바람직한 차원에 대해 수많은 담론을 내어 왔지만 건축의 디테일에 대한 올곧은 접근이 없으면 결코 열매 맺지 못할 것이다. 또한 건축자의 개념에는 건축가와 건축주 뿐 아니라 사회적 건축 수요자, 즉 일반 대중이 포함된다. 이제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건축을 바라보며 디테일을 생각해야 할 때다. 코로나19 저지가 정부 대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듯이, 한국 영화의 성장이 일반 관객의 성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듯이, 우리 건축의 수준은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 없이는 세계적이 될 수 없다.

한동욱 남서울대 교수·㈔충남도시건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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