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한빛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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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막 시작한 초심자 때 맡았던 제품 디자인 프로젝트 첫 회의 때였다. 업체 측에 디자인 목표를 물어봤더니 `그냥 아주 예쁘게 디자인해주세요`라고 요청을 했다. 제품을 구매할 소비자층을 물어봤더니 전 연령층이라고 그냥 예쁘게 해주시면 된다는 답이 돌아 왔다.

실제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예쁘게 디자인해달라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오랜 기간 예쁜 무언가를 만드는 전문적인 직종으로 여겨졌고 그 역할을 해왔다.

나부터도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멋지고 예쁜 것을 만들어 내는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디자이너로 지내면서 이 같은 생각은 많이 무너지고 모호해지고 있다.

예쁘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오랜 역사를 통해 `미`를 추구해왔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적인 특질을 가진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디자인은 산업적 생산물에 미적인 가치를 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디자인은 기업의 상업적 이익을 높이고 나아가 제품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는 디자인이 변해온 과정과도 일치한다. 디자인은 유행하는 감성에 맞춰 판매를 증진시킨다. 소비자와 사용 환경, 경험, 맥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쁜 대상물을 만드는 것은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적인 감상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라는 문제도 있다. 누군가는 A 디자인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B 디자인을 더 좋아할 수 있다. 절대적인 미 자체가 모호한 것이다.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디자인은 클래식이 아니다.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디자인은 디자인일 수 없다. 프랑스 출생의 미국 산업디자이너로서 일찍이 디자인에 유선형을 도입하고 코카콜라병,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의 포장 디자인을 담당한 레이먼드 로위는 "잘 팔리는 디자인이 무조건 좋은 디자인이다"라고 일갈했다.

로위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귀신같이 알아내는 감각을 타고 났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디자인이 대중들 속으로 더 잘 침투하려면 엄숙함, 권위, 진지함보다는 친숙하고, 익숙하고,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더 좋다.

디자인은 대중과 같은 눈높이에서 표현한다. 대중들은 창작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최적의 새로움에 반응한다. 선택 상황에서 소비자는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 둘 중 하나에 고민하는데 이때 수용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친숙한 놀라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친숙함 속 놀라움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욕구를 계속해서 자극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잠재의식 속에 현재보다는 더 나은 무엇을 꿈꾼다. 시각적 메시지란 현실의 부족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메시지의 주장에 따른 결과,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긍정적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자이너의 노하우란 디자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지루한 과정 속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얻어진 자신만의 독특한 감수성이자 창의성이다. 체험을 통해서 터득할 수 있는 시각적 노하우는 사실 어떤 서적이나 강연에서 소개되지 않으며 소개 될 수도 없다.

우리는 이를 내공(內功)이라 한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내공에도 각각 여러 수준이 있음을 짐작해본다면, 디자이너가 생산하는 결과물의 품질 또한 그 내공의 깊이에 비례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내공을 키우려면 더욱 철저한 실험 정신을 앞세워 이미 익숙한 것이 아닌 새로운 모험을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 디자인이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무엇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쁜 디자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많다. 어떻게 예쁜 디자인인지가 중요하다.

이성춘 한빛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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