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조선시대에 제작된 강수량 측정 기구인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測雨器)`가 보물 지정 50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 함께 대구 경상감영·창덕궁 이문원 측우대(測雨臺) 등 3점을 국보 제 329-331호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측우기와 측우대가 국보로 지정되기는 처음이다. 보물 지정 이후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는 49년, 측우대 두 점은 35년 만에 국보가 됐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는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 기구로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양에서 측우기는 영국의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에 의해 1662년 최초로 서양식 우량계가 만들어졌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220년이 늦은 시기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에 대해서는 1911년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지에 처음 소개됐고 이 때 세계 유일의 측우기로 보고됐다.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는 조선 시대 충남 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에 설치됐던 것으로, 1915년 경 일본인 기상학자가 국외로 반출한 뒤 1971년 일본에서 환수돼 서울 기상청이 보관해 오고 있다.

이 측우기는 1837년(헌종 3년)에 만들었으며 높이는 1자(尺) 5치(寸), 지름 7치, 무게 11근이다. 오늘날 치수로 환산하면 높이 31.9cm, 지름 14.9cm, 무게는 6.2㎏에 해당한다. 또 바닥면의 명문에서는 통인(通引), 급창(及唱), 사령(使令)의 직책을 가진 관리들이 관련 업무를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우기의 명문은 15세기 세종대 강우량 측정제도가 19세기까지 계승됐음을 보여준다.

세종 대 확립된 측우기 제도는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영조 대에 새롭게 확립된 측우대 제작을 증명해 주는 유물이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이다.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전후면에 `측우대(測雨臺)`라고 새기고 `건륭 경인년(1770년) 5월에 만듦(乾隆庚寅五月造)`이라는 제작시기가 새겨져 있다. 크기는 상면 길이와 폭이 36.7×37.0cm, 높이 46cm, 윗면 가운데 구멍은 지름이 15.5cm로서, 포백척의 1자가 약 46cm라는 점을 고려하면 측우대 규격을 공식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는 1782년(정조 6)에 제작된 것으로, 측우대 제도가 정조 연간(1776-1800)에도 이어졌음 알려주는 유물이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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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감영 측우대 앞면
대구감영 측우대 앞면
공주감영 측우기
공주감영 측우기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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