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자 대덕대 교수
장혜자 대덕대 교수
우리는 사회가 좋아지면서 개인 각자 추구하는 삶이 다양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전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것을 누리며 살까를 고민한다.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켜 주는 먹거리를 위한 맛 집을 검색하는 것도, 어디로 여행을 갈까를 고민하며 손바닥 안의 스마트 폰으로 다양한 여행지를 검색하는 것도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몸을 움츠리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을 우려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는 상황 속에 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그 어떤 질병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을 경계하고, 또 내 몸에 집중하면서 그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게 된다. 어떻게 하면 마스크를 한 박스 더 구입할까에 관심이 높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는 모습이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 보이지 않는 것이 두렵다 보니 무엇이든 가상의 현실을 스스로 만들며 사람이 아닌 정보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 눈에 익숙해진 모습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 속의 삶이 돼 버렸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할 시간 속에도 언젠가부터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누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이나 어른들까지도 손 안에 있는 스마트 폰에 빠져 다양한 정보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다. 하루 뉴스를 읽고, 유튜브 속에 있는 영상들과 글자들을 보며 모두가 진실의 세상인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검색 포털에 물어보면 되고, 유튜브를 즐긴다. 필자만 해도 책을 보는 것이 좋아서 지금도 책을 펼쳐놓고 잔잔히 읽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책을 보는 것 보다 스마트 폰으로 정보를 빨리 찾고 그렇게 공부를 한다. 백과사전을 보며 공부하는 것은 구식으로 보여 지는 세상이 됐다. 공부를 잘 하려면 우리 선생님들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말씀했었는데 지금은 많은 것들을 컴퓨터와 유튜브를 통해 학습하게 된다. 그러함이 똑똑한 모습인 듯하지만 변화는 시간과 속도의 적절성이 기본이 됐을 때 가장 좋은 결실을 이룬다.

우리는 사람 냄새를 잃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여전히 고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할 상황에서 문자와 카톡을 통해 상호작용을 한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세련된 사람이고 예의가 있는 사람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요즘 `전화를 하면 예의가 없는 사람이고 문자와 카톡을 하는 사람은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우리도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이기 위해 말이 아닌 문자로 소통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건가? 이러한 모든 것들이 빠른 세상을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가 돼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건 좋은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또 사람이 사는 세상에 우리가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마음과 바라볼 수 있는 서로간의 적정한 거리는 꼭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20대에 느껴보지 못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이젠 가끔씩 필자의 마음에도 동일시하게 하는 것들이 생긴다. 빠르게 변화되는 세상을 앞으로 어떤 속도로 따라가며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세상은 변화무쌍하게 발전해 가고 있고 기계와 과학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은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잠자고 싶을 땐 잠을 자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이 기본이 되고 뒷받침 될 때 건강하게 잘 자라고, 부부는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이 담보될 때 건강한 가정을 이룬다. 우리가 여전히 사람을 마주하고 서로 간에 사랑과 믿음을 갖고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 우리 삶의 기본과 중심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장혜자 대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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