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남편을 내조하고, 나의 일까지 해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미숙하게라도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가훈(나의 강요로 만든 거지만) 아래, 다들 스스로 알아서들 잘 해주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손이 가야만 해결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어떤 때는 아이가 셋인지, 넷인지 구별이 안될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모든 상황을 오롯이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이 과정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지 이미 오래다.
고생 끝에 큰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있기에 나의 가정이 이제 완전체를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아내와 엄마가 아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자아를 다시금 찾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워킹맘 간호사 생활이 이곳에서 10년이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과 함께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됐다.
예전 중간연차일 때는 언제든지 달려가 의지할 선배들이 있었고, 나의 일을 같이 겪어냈던 동기들이 있었고, 심부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킬 후배가 있었다. 여기저기 어울릴 수 있는 선후배들이 있어 일이 힘든 건 저절로 잊고, 그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40줄이 되어 선배간호사가 되고 보니 의지할 선배들은 하나둘 줄어 있었고 동기들도 육아와 3교대의 고됨, 체력적인 이유로 이미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후배들은 그사이 성장해 이젠 심부름시킬 엄두가 안 난다. 세월이 제법 흐른 탓이다. 10년을 버텨낸 나도 대단한 거겠지만.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다. 나는 이제 예전보다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의 이해하지 못했던 선배들의 입장과 아직도 간호 실무 속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의 입장을 고루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음은 물론,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이제껏 내가 겪어왔던 내 삶의 일부였고, 나의 고민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들의 입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앞만 보고 달렸던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일방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개인적인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베풀어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느끼게 되었다. 조금은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또 치열하게 살아냈던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들은 이제 값진 추억이 되어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중요한 밑천으로 계속해서 쓰이게 될 것이다.
나는 요즘도 종종걸음으로 출근을 한다. 아침 일찍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주차관리 직원들이다. 아침마다 인사를 한 탓에 이제는 말도 제법 나눈다.
그분이 나를 보고 말한다. 아침 시간에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오시는 거 멋있다고….
그러고 보니, 난 아침 출근시간이 좋다. 신난다. 일하러 갈수 있다는 것, 아직까지 쓰임있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현재, 이곳에 만족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난 긍정적이다. 늘 이겨낼 수 있다 라는 깊은 내면의 소리, 해낼 수 있다, 해낼 것 이라는 긍정의 힘. 이것이 10년이란 세월을, 아이 셋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이곳에서 나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으리라.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꾸준함.
나의 이런 에너지를 이제는 조금씩 나누어 주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동료들과 또한 더 열심히 살아 10년을 더 버텨내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그들이 또한 나처럼 20년 넘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주고 싶다.
또한 이들이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에게 나보다 더욱더 훌륭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오늘도 나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다.
장예은 건양대병원 심장내과 책임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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