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장예은 건양대병원 심장내과 책임간호사
장예은 건양대병원 심장내과 책임간호사
아침 5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나면 드디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남편을 내조하고, 나의 일까지 해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미숙하게라도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가훈(나의 강요로 만든 거지만) 아래, 다들 스스로 알아서들 잘 해주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손이 가야만 해결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어떤 때는 아이가 셋인지, 넷인지 구별이 안될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이 모든 상황을 오롯이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이 과정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지 이미 오래다.

고생 끝에 큰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있기에 나의 가정이 이제 완전체를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아내와 엄마가 아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자아를 다시금 찾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워킹맘 간호사 생활이 이곳에서 10년이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과 함께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됐다.

예전 중간연차일 때는 언제든지 달려가 의지할 선배들이 있었고, 나의 일을 같이 겪어냈던 동기들이 있었고, 심부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킬 후배가 있었다. 여기저기 어울릴 수 있는 선후배들이 있어 일이 힘든 건 저절로 잊고, 그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40줄이 되어 선배간호사가 되고 보니 의지할 선배들은 하나둘 줄어 있었고 동기들도 육아와 3교대의 고됨, 체력적인 이유로 이미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후배들은 그사이 성장해 이젠 심부름시킬 엄두가 안 난다. 세월이 제법 흐른 탓이다. 10년을 버텨낸 나도 대단한 거겠지만.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다. 나는 이제 예전보다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의 이해하지 못했던 선배들의 입장과 아직도 간호 실무 속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의 입장을 고루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음은 물론,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이제껏 내가 겪어왔던 내 삶의 일부였고, 나의 고민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들의 입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앞만 보고 달렸던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일방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개인적인 삶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베풀어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느끼게 되었다. 조금은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또 치열하게 살아냈던 그 시절의 기억과 경험들은 이제 값진 추억이 되어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중요한 밑천으로 계속해서 쓰이게 될 것이다.

나는 요즘도 종종걸음으로 출근을 한다. 아침 일찍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주차관리 직원들이다. 아침마다 인사를 한 탓에 이제는 말도 제법 나눈다.

그분이 나를 보고 말한다. 아침 시간에 그렇게 씩씩하게 걸어오시는 거 멋있다고….

그러고 보니, 난 아침 출근시간이 좋다. 신난다. 일하러 갈수 있다는 것, 아직까지 쓰임있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현재, 이곳에 만족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난 긍정적이다. 늘 이겨낼 수 있다 라는 깊은 내면의 소리, 해낼 수 있다, 해낼 것 이라는 긍정의 힘. 이것이 10년이란 세월을, 아이 셋을 키우며 워킹맘으로 이곳에서 나를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으리라.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꾸준함.

나의 이런 에너지를 이제는 조금씩 나누어 주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동료들과 또한 더 열심히 살아 10년을 더 버텨내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그들이 또한 나처럼 20년 넘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주고 싶다.

또한 이들이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에게 나보다 더욱더 훌륭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오늘도 나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다.

장예은 건양대병원 심장내과 책임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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