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국제로타리3680지구 총재
김영삼 국제로타리3680지구 총재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만 옳고 남들은 틀렸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찾아 독선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난폭하게 운전하고도 큰소리치고, 파렴치한 사기를 저지르고도 정당화하는 모습들, 부모를 폭행하고도 당당하게 이유를 대는 철면피,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벌어진 살인, 사소한 주차시비로 일어난 살인 사건, 10대 비행청소년들에게 훈육하다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는 어른 등 많은 이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행동하며 정의로운 것에는 냉담해지고 오직 자신만의 이익에 과몰입한 행동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모든 초점을 성과에 두고 있다 보니, 사람들의 머릿속, 마음속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 차있다. 그러니 정감 넘치는 인정이나 조그마한 희생도 기대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위기에 빠져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실종된 듯하다. 타인에 대한 신뢰나 존중은 점점 밑바닥부터 깨져가고 있다. 일본의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단편 소설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른 이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일깨워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한 의원이 준비해온 이야기를 읽어 내려간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관들과 의원들이 모두 감동해서 울었다고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밤 북해정 우동집의 장사가 마무리될 늦은 밤에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애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이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세 모자는 우동을 1인분만 주문해도 될지 조심스럽게 물었고, 주인은 흔쾌히 1인분의 우동을 주문 받고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삶지 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아 내주었다.

주인의 배려심이 담긴 우동을 맛있게 먹고 가게를 떠난 그 세 가족은 그 다음 해에도 가게를 작년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방문해서 우동 1인분을 주문했고, 여주인은 남편에게 서비스로 3인분을 내주자고 했지만 깊은 배려심을 가진 남편은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것을 걱정해 우동 반덩이를 추가해서 내주었고 세 가족은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몇 해 동안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북해정 우동집은 리모델링을 했지만 2번 테이블 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서 우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과 배려를 읽을 수 있다. 2인분의 우동을 삶아서 내어주면 티가 나서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주인은 우동을 한 그릇에 1인분 반의 양을 넣어 줬다.

우동집 주인의 배려하는 마음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중국의 성현 맹자는 양심을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달려가 구하는 마음처럼 그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할 때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나 불이익을 논하기 전에 행동하는 양심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다.

맹자가 가르친 `측은지심(惻隱之心)` 공감하는 마음,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마음을 로타리 4가지 표준에서 찾아본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가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이 네 가지가 로타리안들의 행동 기준이다.

옛 성현의 가르침과 로타리의 가르침이 다를 바가 없다.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삶의 화두기도 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되새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이 땅에 배려심이 다시 싹트고 세상에 만개하도록 하는 씨앗이, 바로 우리 로타리안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띄운다.

김영삼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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