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 사회가 모든 초점을 성과에 두고 있다 보니, 사람들의 머릿속, 마음속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 차있다. 그러니 정감 넘치는 인정이나 조그마한 희생도 기대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위기에 빠져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실종된 듯하다. 타인에 대한 신뢰나 존중은 점점 밑바닥부터 깨져가고 있다. 일본의 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단편 소설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른 이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일깨워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 위원회 회의실에서 한 의원이 준비해온 이야기를 읽어 내려간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관들과 의원들이 모두 감동해서 울었다고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밤 북해정 우동집의 장사가 마무리될 늦은 밤에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애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이고, 여자는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세 모자는 우동을 1인분만 주문해도 될지 조심스럽게 물었고, 주인은 흔쾌히 1인분의 우동을 주문 받고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삶지 않은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아 내주었다.
주인의 배려심이 담긴 우동을 맛있게 먹고 가게를 떠난 그 세 가족은 그 다음 해에도 가게를 작년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방문해서 우동 1인분을 주문했고, 여주인은 남편에게 서비스로 3인분을 내주자고 했지만 깊은 배려심을 가진 남편은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것을 걱정해 우동 반덩이를 추가해서 내주었고 세 가족은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몇 해 동안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북해정 우동집은 리모델링을 했지만 2번 테이블 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서 우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과 배려를 읽을 수 있다. 2인분의 우동을 삶아서 내어주면 티가 나서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주인은 우동을 한 그릇에 1인분 반의 양을 넣어 줬다.
우동집 주인의 배려하는 마음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중국의 성현 맹자는 양심을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달려가 구하는 마음처럼 그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할 때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나 불이익을 논하기 전에 행동하는 양심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다.
맹자가 가르친 `측은지심(惻隱之心)` 공감하는 마음,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마음을 로타리 4가지 표준에서 찾아본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가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이 네 가지가 로타리안들의 행동 기준이다.
옛 성현의 가르침과 로타리의 가르침이 다를 바가 없다.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삶의 화두기도 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되새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이 땅에 배려심이 다시 싹트고 세상에 만개하도록 하는 씨앗이, 바로 우리 로타리안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띄운다.
김영삼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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