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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겨진 선조들의 얼굴

2020-02-17 기사
편집 2020-02-17 14:42:28
 강은선 기자
 groove@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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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중 'Husman Desire' 展 29일부터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첨부사진1윤길중 Stone Totem Pole 18


프레임 속, 배경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짙은 회색빛 한지 위로 사람들의 표정이 도드라질 뿐이다. 비록 '돌'이지만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기에, 세월의 풍상을 여미어 안은 그 '돌'을 보며 누구의 얼굴인지,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지, 흥미로운 물음표들이 호기심이라는 나무의 싹을 틔운다.

사진가 윤길중(59)의 작업 '석인상'과 '석장승'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가두어 둔, 혹은 그들이 가두어진 시간들, 아주 오래전 그때의 시간과 공간 속을 헤집고 들어가 교감을 해보라며 나지막이 뿌리칠 수 없는 권유를 속삭인다.

윤길중 작가가 5년 동안 800여 곳을 찾아다니며 우리 선조들의 욕망과 애환이 담긴 석인상, 석장승을 담담하게 담아낸 '휴먼 디자이어(Human Desire)' 展이 오는 29일부터 4월 19일까지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열린다. 이번 윤 작가의 'Human Desire' 전시는 루모스와 일본의 출판사 아카아카(AKAAKA)가 공동으로 작품집을 출판, 이를 기념한 출간기념 전시이다.

'Human Desire'는 우리 선조들의 염원이 담긴 석인상 40장과 석장승 30장 등 총 70장의 작품이 담겨있다. 작가가 1년 동안 서울과 대구, 교토를 오가며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집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고인의 흔적은 대부분 묘지에 머무를 뿐이다. 그래서 고인의 후손들은 무덤을 장엄하고 권위 있게 보여주기 위해 돌로 사람의 형상을 본뜬 석인상을 세운다. 물론 그 석인상들이 고인을 영원히 수호할 것이라는 의미도 담아서 말이다. 사진가 윤길중은 왕들의 무덤을 지키는 정형화된 모습의 석인상 대신 조선시대의 관리들, '사대부'의 무덤을 수호하는 석인상에 집중하고 있다.

오랜 시간 전국을 돌며 선조들의 욕망과 애환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결실로 탄생한 작품과 작품집을 함께 선보인다.

'우리 선조들은 조각을 통해 무엇을 담아내고자 했을까. 돌을 조각해 그 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왜 그들을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던 걸까' 작가의 물음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작가는 5년 동안 800여 곳을 찾아 다녔다. 조각상들의 표정과 형태, 세워진 장소를 통해 선조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조명해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녔다.

1700장 가까이 촬영하며 작가가 얻은 답은 'Human Desire'였다. 녹록하지 않은 삶 속에서 위안을 얻고 미래의 희망을 기원하고자 하는 마음, 죽어서도 석인상에 자신의 영혼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욕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석인상은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왕릉에만 세워지다 조선시대(1392년-1910년)에 들어와 사대부들의 무덤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석장승은 주로 조선시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들인데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석인상은 유교에 바탕을 두고 있고, 석장승은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토속신앙에서 비롯됐다. 석장승이 사찰 입구에도 세워진 걸 보면 당시에는 종교와 토속신앙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석인상 중 동자석은 무덤 앞에서 죽은 이와 산 사람 사이에 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한다는데, 불교의 동자승과 유교의 동자석이 이름과 역할이 비슷한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석인상(문인석, 무인석, 동자석)은 무덤 앞에 세워져 무덤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고대 중국 순장제도에서 비롯됐다.

장승은 마을 어귀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밖에서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 위함이었다. 지역에 따라 목장승과 석장승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목장승은 대부분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지배층의 종교이던 유교로부터 탄압받고 소외된 민중들에게 장승은 스스로를 수호하고자 세운 토속신앙의 표식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유교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장승들도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걸 보면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석장승에는 녹록하지 않은 삶 속에서 위안을 얻고 미래의 희망을 기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 죽어서도 석인상에 자신의 영혼을 오래도록 남기려 한 걸 보면 기원을 넘어 욕망에 닿아있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이 많은 연유도 있겠지만 유독 단단해서 조각하기 힘든 화강암에 석인상, 석장승을 새긴 건 시간의 무한성을 기대해서 일 것이다.

작가는 우리 선조들의 욕망이 담긴 석인, 석장승을 단순히 사료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매체로 전통한지 위에 담아냈다. 모노톤 위의 한지에 자연스레 서있는 듯한 석인, 석장승의 모습은 우리 선조들과 함께 오랜 세월 꿋꿋하게 버텨온 굳센 의지와 더불어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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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윤길중 Stone Man 37


첨부사진3윤길중 Stone Man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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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5윤길중 Stone Totem Pole 15


첨부사진6윤길중 Stone Totem Pole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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