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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

2020-02-12기사 편집 2020-02-12 16:36:02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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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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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간을 아까워했다. 죽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동물도 죽을병이 들거나 상처를 입으면 괴로워하기도 하고 저희들 나름의 치료법도 있으리라. 그러나 죽음을 앞둔 시간의 아까움을 느끼고, 그 아까운 시간에 어떻게 독창적으로 살아 있음을 누리고 사랑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건 인간만의 비장한 업이 아닐까."-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박완서

타계 9주기를 맞이한 소설가 박완서의 중·단편작 10편을 묶은 책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가 출간됐다. 그중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암으로 사별한 남편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전쟁 중 오빠와 숙부를 잃고 뒤이어 남편과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흔 지나서야 문단에 등장한 박완서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남다른 감수성과 자의식으로 '박완서 문학'이라는 산을 쌓았다. 피엑스 직원이었던 남자와 첫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던 아름다운 시절도, 그 남자가 끝내 암으로 세상을 떠났던 시절도, 뒤이어 1년 만에 아들을 가슴에 묻었던 시절도 문학 속에 승화했다. 작가가 피로 물든 기억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박완서 특유의 '생의 의지'에 있었다. 삐그덕거리고 찌그덕거리며 살아가는 모든 소시민들에게 박완서는 여전히 변함없는 길동무다.

책의 책임 편집과 해제를 맡은 문학연구자 손유경은 박완서의 작품에 대해 "죽은 자의 비극과 생존자의 불행을 기록하고 발설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짐승처럼 죽어가는 와중에 누군가는 짐승처럼 살아남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반복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이 곧 특권이자 비할 데 없는 축복이라는 작가의 인식은 '복원'을 향한 열망으로 집약된다. 복원이란 원래대로 회복한다는 것인데, 작가가 주목한 회복은 비극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라 비극 이후에도 지속돼야 할 삶에 있다. 상처 입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면, 우리는 회복과 복원을 목적으로 생을 더욱더 빛나게 가꿔나가야 한다는 것이 박완서 문학의 중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추한 육체에 깃든 아름다운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해산바가지'(1985), '환각의 나비'(1995) 등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오늘날 박완서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적 불운 속에서 안타깝게 저물어간 생명들을 애도하는 일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사랑의 가치를 되새기는 경험이 될 것이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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