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2018년 필리핀 대통령인 두테르테는 `국가 과학기술 주간` 개막식에서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연설을 했다.

"누구든지 신과 찍은 셀카를 보여줌으로써 신이 있음을 그에게 증명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 할 것이다"라는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그는 성경의 신을 `어리석다`고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말에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신이 있으면 보여 달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직접 보거나 증명해 보일 수 없다면 `정말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져 본다.

인간에게는 5가지의 감각 곧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 있다. 예를 들어 시각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모두인 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미처 볼 수 없는 많은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작은 생명체라면 바이러스를 들 수 있다. 수시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전자현미경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는데 원자, 원자핵, 양성자, 중성자, 전자, 쿼크 등도 해당된다. 우리 주위에 작지만 역동적인 미시세계(microscopic world)가 존재하는데, 2018년 12월 11일 미국 CNN 방송이 땅 속 깊숙한 곳에 인간 생명체 전체를 합친 것의 수백 배에 달하는 `좀비 박테리아`를 비롯한 생명체를 발견했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알지 못하던 새로운 생명체인데,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여러 의문을 제기하는 발견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는 미시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며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생사에 영향을 주곤 한다.

반대로, 광활한 우주라는 거시세계(macroscopic world)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우주국(ESA)이 2009년 쏘아 올려 우주 나이의 비밀을 밝혀준 플랑크 망원경의 관측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 들 중 눈에 보이는 물질은 겨우 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천문학계에 따르면,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이 일어난 이후 계속 팽창하는데 우주 팽창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팽창이 일어나는 힘의 원천을 암흑에너지(dark energy), 암흑물질(dark matter)로 설명하고 있다. 그 정체가 암흑 속에 싸여 있다고 해서 `암흑`이라 부른다. 우주학자들이 작성한 우주론 표준모형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는 성분 가운데 암흑물질이 26.8%를 차지하고 있다. 암흑 에너지가 68.3%인 점을 감안하면 우주는 95.1%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다.

인간은 일정한 범위만을 볼 수 있을 뿐,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세계를 다 볼 수 없다. 물론 두테르테의 말처럼, 다 볼 수 있거나 알 수 있는 존재는 이미 신이 될 자격이 없다. 다 포착되고 파악되며 증명되는 존재는 더 이상 신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수 있는 범위나 사물이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 보이지 않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존재하면서 보이는 것도 있지만, 거대한 우주와 미세한 세계처럼 존재하되 보이지 않고 다 알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 신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은 모습으로 우리 마음에 와 있고, 동시에 우주를 넘는 큰 존재이기에 인간이 볼 수 없지 않을까.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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