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정신으로 쌓은 자부심

붙잡아 세우고 싶은 시간 앞에서 세월의 속도감을 느끼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한해가 시작됐다. 얼마 전 나는 오랜만에 오랜 친구와의 약속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립다 못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아주 작은 소심함으로 약속한 날을 기다렸다.

기다렸던 친구의 전화가 울렸고, 퇴근 후 만나자는 나의 제안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가슴을 후려쳤다.

"너 `아직도` 일하러 다니니?"

아니 이게 웬 날벼락 같은 되물음인가! 듣고 있던 내 귓불이 후끈 달아오르는 걸 옆에 있던 동료도 알아챘을 것만 같다. 다음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뭐가 잘못 된 거지`라는 철렁한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내가 너무 오랜 다닌 걸까?`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업이었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겠지?`

오랜 기간 일을 지속하는 게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기에, 나름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는 아직도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내가 의아하게 여겨졌나 보다. 직업을 꼭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지 않고 나의 애정과 정성, 그리고 말로 다 표현 못하는 열정으로 성실하게 달려왔던 지난날들이 스치며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에 잠시 머뭇거려졌다.

친구의 짧은 말 한마디로 오랜 간호사 일과 간호사의 직업인식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미국 간호사 면허를 따고 미국에서 간호사를 시작하려 준비할 무렵이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이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 면허증을 가지고 있어도 각자가 속한 주에 이서(endorsement) 신청을 해야 했고, 외국인 신분이기에 취업 허가증(work permit) 신청을 하면 6개월 정도가 지난 후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서류 준비를 어렵게 마치고 이력서를 쓸 때였다. 경력 란에 `10년`이라고 쓴 것을 본 지인이 경력을 조금 줄이라고 했다. 두 자리 숫자로 쓰인 경력은 이곳에선 엄청난 존경(respect)과 명성(honor)을 의미하기에 채용에 부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때 당시 내가 생각해왔던, 경력에 대해 가졌던 `길어야 좋다`는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고 문화적 충격 앞에 `멍`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결국 8년으로 수정해 취직했던 그 때를 되돌아보며, 우리 사회가 간호사로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가를 돌아보았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겐 친구같이 친근한 느낌이고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해 있었는데 나의 마음에 친구가 던진 `아직도`라는 말은 우리사회 여성의, 아니 거창하게 여성이라는 표현보다는 간호사의 수명이 짧다는 대중적 인식이 아닐까 싶었다.

힘든 업무와 불규칙적인 시간의 연장선 위에 서있는 새내기 간호사들에게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계속해온 선배의 모습이 과연 존경의 대상이었을까? 혹시 `아직도 다니고 있네?` 라는 한심함으로 비춰지지는 않았을지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개인마다 결혼, 육아 등의 사정이 있겠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다면 힘든 일도 함께 발걸음하며 잘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을 선택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고달팠던 지난날의 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조금 힘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기보다 고개를 들고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간호사로서의 경력은 나의 노력과 땀방울이 차곡차곡 싱그럽게 맺어지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결실`이라는 사실에 가슴 벅찰 것이다.

간호의 길을 처음으로 걷게 될 2020년의 새내기 후배들에게 부드러운 마음과 사랑을 담아, 멀리서 떠돌며 밀려오는 압력이 아닌 필드 가까이까지 전해지는 인내심에 온기를 담아 날려 보내본다.

권로사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간호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