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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포럼] 산소를 그린 라이트, 세포를 담은 클림트, 인공지능을 춤추게 하는 이주행

2020-02-11기사 편집 2020-02-11 08: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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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사람들이 모여 유리병 안에 새를 넣고 에어펌프로 공기를 빼면 새가 죽는지 실험하는 현장을 그린 조셉라이트(Joseph Wright)의 '에어펌프의 새에 관한 실험' 그림이 있다. 그림이 그려진 1770년대 중반은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절이었고 근대화학의 시대로 넘어가던 때였다. 조셉라이트는 화학실험을 통해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혁신하며 산업·과학 혁명의 전환기를 이끌던 사람들이 만드는 결정적 장면을 미술가의 눈으로 포착해 그려낸 것이다. 그것은 화학과 미술이 시대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1900년 전후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 과학과 예술의 허브였다. 전 세계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때 무의식을 분석한 프로이트와 찰스 다윈을 연구하던 과학 혁명가들과 교류하며 세포의 구조에 매료되었고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현존하는 미술품 중 1600억 원이라는 최고가에 거래된 클림트의 '아델레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매혹적인 여인의 옷자락에 직사각형 정자, 타원형의 난자를 그려 넣어 생명과 번식의 상징을 대비시시켜 표면아래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모델과 배경의 경계를 허물어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새로운 미술혁명의 시대를 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아델레블로흐바우어 그림은 과학과 예술이 만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중요한 순간을 대표하는 걸작인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과학기술 혁명과 사회혁신의 전환기,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또 다른 결정적 장면의 시작은 과학기술의 메카, 대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 출연(연)의 예술가 레지던시 협업 프로그램, 한국화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 카이스트의 과학예술 전용 전시 공간 구축, 대전시립미술관의 과학예술융합 비엔날레 등이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아시아의 춤꾼들이 대전의 과학에 매료돼 인공지능과 예술의 융합을 선보이기도 했다. 원도심 재생에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접목하려는 노력이 확대되고 있고, 새로운 비전을 창조하려고 하는 다양한 자생적 커뮤니티도 성장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예술, 사람과 사회의 소통과 융합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 압권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공지능 연구자인 이주행 연구원의 코드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이나 직접 찍은 사진을 가지고 직접 고안한 픽셀스택, 스타스왑, 라인그리드 등의 방법으로 이미지 색상별 픽셀 정열을 다르게 하거나 두 이미지를 결합, 하나의 형식에 전혀 다른 색상을 입히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작품 활동과 소통 과정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인공지능이 예술을 만나 사람들의 관심을 촉진하고 작품이 사람과 사회를 만나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예술처럼 들여다보고 예술가와 토론하며 예술적 상상력을 접목시키는 순간, 예술가들이 과학기술이 밝혀내는 진실을 포착하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과학을 예술의 세계에 접목하고자 애쓰는 찰나, 과학과 예술의 교류를 후원하는 후원자와 시민을 만나 세상의 꿈과 결합하는 순간, 그 순간에 과학기술혁명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것이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이끄는 원동력이고 혁명의 시대를 열어가는 결정적 기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더 많은 연구자와 예술가, 시민이 자신의 세계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연구와 예술 세계, 일상생활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 세계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소통하며 스스로와 세상을 올바로 진화시키는 과정에 동참하기를 라이트와 클림트와 이주행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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