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의 사전적 의미는 `한 시대의 사회제도와 시스템 등에 대하여 일반인이 인식하고 있는 공통적 개념의 집합체`이다. 학문은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종교의 도그마(Dogma) 신학과 자연의 논리적 해석인 과학 사이의 대립으로 발전해왔으나 아직도 우주의 삼라만상 해석에서 나타난 과학의 불완전성을 사변(思辯, Speculation)적 철학과 인간의 허구적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학문에 의한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그 시대의 사상과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인류가 탄생시킨 민주주의와 종교 같은 문화변혁은 새로운 이념(ideology)과 제도를 만들었지만 산업혁명처럼 문명의 발전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양질 변환의 법칙`에서 말하듯 일정 수준의 학문에 양적 변화가 누적되어 어느 순간 새로운 산업혁명을 탄생시킨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18세기 1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은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기계공업 시대를 의미하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의 2차 산업혁명은 전기에너지에 의한 대량 생산공정 시대를 의미한다. 컴퓨터의 출현은 1970년 이후 3차 산업혁명으로 ICT시대를 열게 되었고 지금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블록체인 기술 등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인 디지털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모든 산업혁명은 30년 내외 짧은 기간 동안 핵심 산업기반이 구축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4차 산업혁명 또한 30년 안에 완성될 것이다.

역시 작금의 디지털 문명은 대학 패러다임 바꾸고 있다. 초지능(Hyper-intelligence), 초연결(Hyper-connectivity), 초융합(Hyper-convergence)의 특성은 100년 넘게 지속해온 전통적 아날로그 교육을 디지털화(Digitization)하고 있다. 교육 콘텐츠가 디지털기술과 융합되어 새로운 학문을 만들고 교육 방법과 수단이 디지털 도구에 의해 새로운 대학교육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대학의 통념적 개념은 19세기 대학은 귀족들의 리더십과 학문을 위한 교육원(Academy)으로, 20세기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통한 최고의 전문 인력양성과 학문연구기관(University)으로 정체성을 확고히 해왔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대학 패러다임은 산·학·연의 협업을 통해 일과 학습병행 체제인 새로운 지적창조기관(Intellectual creation institution)으로 변모되고 있다. 또 지역 문화를 창달하고 산업기술을 선도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이곳에서 학생과 교수 그리고 산업 전문가들의 협업 조직을 통한 학습과 연구 그리고 유무 형 재산 창출이 이루어진다. 대학은 산·학·연 공동체의 반 영리 법인(Semi-profitable corporation)으로서 유 무형 재산의 상업화를 통한 영리활동과 지역 사회와의 협업을 통한 지역발전의 혁신기관으로서 비영리적 역할을 병행하여야 한다.

미국 다빈치 연구소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디지털 시대는 인재가 지배하는 사회로 초 고용시대가 오고 기술주기가 매우 짧아서 생애 8가지 이상의 직업을 갖는 단기 고용시대"라고 예고한 바 있다. 대학교육은 `나도디그리(nano-degree)`와 같은 다양한 학제가 필요하고 일과 학습이 병행되는 `액티브러닝(active learning)`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 방법, 학문의 융합과 디지털화, 그리고 맞춤식 교육프로그램 등이 요구된다. 지역 혁신 주체의 가치창조기관으로서 문화 창달과 경제발전을 위해 지역 사회와 밀접한 동업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는 받아들여야 할 숙명적 결과물이지만 미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갈 선택적 과제다. 대학은 디지털 시대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질 높은 인재양성과 가치창조를 위한 반-영리 법인으로 변화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일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 수 감소와 높은 등록금의존도라는 대학에 씌워진 멍에를 벗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보장되고 수월성이 필수인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원묵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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