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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마당과 텃밭'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2020-02-06기사 편집 2020-02-06 07: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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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형태 리울 문인(전 서울시 교육의원)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과, '마당과 텃밭이 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

아는 문인 중에 익숙한 서울생활을 접고 충청도로 이사를 간 사람이 있는데,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래 시골생활이 어때요?"라고 묻자, 마당과 텃밭 덕분에 자신의 삶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처음으로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마당'만 바라보아도 없던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빨래도 널고 곡식도 말리고 낙엽도 쓸고 흰 눈도 치우고, 작은 꽃들이 울타리처럼 자라는 것도 지켜보고, 때때로 차 한 잔 들고 온몸으로 햇빛과 바람도 맞고... 또한 작은 '텃밭'에 상추·고추·가지·오이 등을 몇 포기씩 심었는데, 수확 철이 되면 혼자 다 먹을 수가 없더란다. 내다 팔기에는 적고 혼자 먹기에는 많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게 되더란다.

이야기를 듣던 누군가가 "그렇게 땀 흘려 가꾼 것을 남에게 그냥 주려면 아깝지 않아요?"라고 묻자, "그게 참 이상하데요. 분명 시간과 정성을 엄청 들였으니 아까워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아깝지 않더라고요. 서울 살 때는 냉장고에 채소와 과일이 썩어나가도 이웃과 나눌 줄 몰랐는데." 그도 자기가 의아스러울 정도로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집에 상추·고추·가지·오이 등을 나눠주었더니, 그 집에서는 감자·고구마도 가져오고 호박·옥수수도 나눠주더라고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말 자연스럽게 더불어 나누며 사는 삶을 실천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번개를 맞은 듯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래, 저것이 이웃 간 정이고 사람내음 물씬 풍기는 인심인데, 우리 도시인들이 사막처럼 이렇게 각박하고 메마르게 사는 것이 다 마당과 텃밭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구나!"

알고 보면 우리 한국인 모두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마당과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운동장 없는 학교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마당과 텃밭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도시화되면서 마당도 텃밭도 화단도 다 사라졌다. 마당과 텃밭만 사라진 게 아니라 덩달아 마음의 여유와, 나누며 더불어 살던 '같이의 가치'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어느새 팍팍한 사막처럼 변해버린 우리네 삶.

옛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것은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벌집이라고 하지 않을까? 물론 전원주택처럼 마당과 정원이 있는 집에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집 안 화분에 꽃나무 몇 그루라도 심고, 고추·딸기 등 채소 몇 포기라도 가꾸며, 잃어버린 여유와 말라버린 정서를 찾아야 할 것이다. 햇볕을 끌어당겨 광합성을 하는 작은 식물들을 키우다보면 농부의 마음도 하늘의 마음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려운 사람들은 가끔씩 넓은 공원과 푸르름이 숨 쉬는 농촌을 찾아 마음의 근육을 키우듯 마음의 마당과 텃밭만이라도 회복해야 할 것이다. '마당'은 최소한의 여유와 사색의 숨터이고, '텃밭'은 자연의 신비를 일깨워주는 교실이자, 기쁨과 나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형태 리울 문인(전 서울시 교육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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