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가 컸던 `사월의 장례식`은 먼 친척의 장례식에 갔다 느낀 것을 희곡으로 만든 것이었고, `아버지의 집`은 나의 근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현재의 괴로움. 무능력한 아버지가 나온 `팬지`는 가족을 국가에 빗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가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부조리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보편적으로 공감하기 가장 쉬운 소재가 가족이라 생각해 선택한 방법들이었는데 그게 실제 내 이야기로 혼동이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어느 순간,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배우와 그 연기를 혼동하는 것은 작가를 작품과 혼동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던 나인데, 나 역시 한때는 섭섭했던 오해들을 누군가에게 씌우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연극뿐만이 아니었다. 미술이나 음악에 종사하는 분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 사람의 예술에는 그 `사람`이 담기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예술가들이 자기에게 자연스레 입히고 있는 색깔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색깔은 내가 입히지만 내가 입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칠해지는 색이 아니라 내가 사는 그대로 칠해지는 색일테니.
나는 내 글에, 내 연극에 어떤 색을 입히고 있을까. 내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밤이다. 그리고 굳이 욕심을 부리자면 내 인생의 모든 시기가 모두 다른 색으로 입혀지길 바라본다. 그 끝에 가선 결국 한 가지 색깔로 남을지언정, 일단 오늘 밤만큼이라도 저 어둠에 컬러풀한 꿈을 그려본다. 김주원 극단 백 개의 무대 대표 (극작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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