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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가까이 봐도 비극, 멀리서 봐도 비극, 카스트라토(하)

2020-01-29기사 편집 2020-01-29 08: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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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바리톤 이성원
바로크 시대 유행했던 카스트라토. 그들은 자의가 아니라 부모 또는 타의에 의해 거세당했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전편에서 이야기 했듯, 성공한다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기에 한해 5000명이 넘는 소년들이 거세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거세 과정에서 많은 소년들이 사망하였으며, 성공한 1% 미만을 제외한 나머지 카스트라토들은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비참한 삶을 맞게 된다. 대부분 극심한 생활고에 아편중독, 변태 남색가 들의 노리개가 되는 남성성을 상실한 최악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내시에 비교를 하지만, 내시들은 궁중의 수요에 의해 거세되었으며, 거세되어 내시가 된다면 궁중에서 삶, 적어도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카스트라토보다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관점이다. 하지만 카스트라토는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볼거리와 들을거리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에 의해 탄생된 카스트라토. 그로인해 희생된 많은 소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바로크의 화려한 오페라와 처절한 민낯 카스트라토는 나폴레옹의 시칠리아 점령과 로마의 교황청에 의해 금지된다. 특히 나폴레옹은 카스트라토는 반인류적인 범죄라고 정의하였으며, 카스트라토의 양성학교를 폐교하였고, 카스트라토가 무대에 서는 것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오페라의 흐름 역시 변하게 된다. 대중들은 카스트라토의 현란하고 화려한 개인기보다 대본과 음악에 충실한 극을 보길 원했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카스트라토의 무대는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렉산드로 모레스키(1858-1922)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바리톤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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