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대전·충남에서 180만 명 이상이 혁신도시 지정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은 적어도 일대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는 전무후무한 지역민 여론의 결집 사례에 해당한다. 대전 80만 충남 100만이 참여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전과 충남의 총인구 절반이 움직였다면 실질적으로 서명운동의 꼭지점을 찍은 것과 진배없다. 시·도민들이 이런 식으로 또 나서는 상황이 온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이다.

이런 규모의 인원이 한날 한시에 광장으로 나가지 않았다 뿐이지 기실 광장의 그것으로 치환되지 못할 것도 없다. 굳이 차이라면 광장의 목소리가 직설적이고 배설적이라면 대전과 충남인들의 혁신도시 서명운동은 균형발전 가치 및 지역 역차별 해소 논리를 놓고 선하게 다투는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느릿하게 보이긴 했어도 누적 서명인수 180만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접근법에 힘 입은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180만 서명이 머금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도 불구, 유관 정책의 불확실성이라는 안개는 걷히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 쪽은 물론이고 정치권 일반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상황 전개를 일컫는다. 온라인 국민청원도 20만 명을 채우면 답변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한다. 하물며 그 9배에 달하는 인원의 자필 서명부가 무색하게도 대전·충남 혁신도시 지정 문제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상응한 정책(치)적 해법 공유는커녕,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계산이 서질 않는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듯하다.

희망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현재 가능한 방법은 혁신도시 지정·절차를 명시한 법안(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 처리다.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산자위에 계류 상태다. 법안 심사 소위라는 1단계 문턱은 넘었지만 국회에서 후속 절차를 위한 페달을 밟아야 한다.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2월 국회가 마지노선이라는 지적이다. 3·4월은 총선 시즌이고 그 다음 달이면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까닭에 골든 타임은 2월 국회 뿐이다.

이렇게 유효한 경로가 살아있음을 감안할 때 신년 기자회견을 통한 대통령의 대전·충남 혁신도시 지정 관련 답변 내용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사안의 맥을 짚긴 했어도 `총선 후 검토` 대목이 아무래도 걸린다. 차라리 앞뒤 자르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보겠다`고만 했으면 해석의 탄력성이 손상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시점을 특정함으로써 미필적이나마 긴장지수를 떨어트린 측면이 없지 않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총론적 인식이라 칠 수 있다. 반면에 청와대 정책 참모들의 현안 대응력 부분에선 아쉬움이 느껴진다. 대통령 언어에 국회 상황과 상충될 여지가 있으면 보충 설명을 내놓으면 된다. 예컨대 법제화 단계를 거친 후 정부의 정책 판단 영역으로 넘어오면 긍정 검토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정리해줌으로써 1차적으로 공을 국회와 정치권에 넘겨야 했다고 보는데 그러질 않는 바람에 직무적(혹은 정무적) 해태라는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지역 공동체 구성원 180만 응집은 집단의 이기주의적 주장 차원을 뛰어넘는, 국가 자원 배분의 비례성 회복이라는 보편적 기본권 가치를 관통한다 할 것이다. 정책 이행 주체들은 이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할 일이다. 아울러 그간의 경과가 어떻든 대전과 충남에 혁신도시 지정을 위한 정책적 수렴 작업을 마냥 미루지 않기를 촉구한다.

청와대·국회에 각각 전달된 180만 서명부는 현대판 만인소의 재현이다. 이 민심 불발탄을 놓아두고 4월 총선 민심의 강물 위에 배를 띄우려 들면 안된다. 같은 논리로 숫자나 물리적 부피의 문제로 보는 것도 단견이다. 그 내면의 집단정서가 발신하는 메시지의 불가역성을 꿰뚫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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