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은 프랑스 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회화 가운데 아주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이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까이유보트, 쇠라, 뷔야르 등은 19세기 후반 당시 시대상을 그들의 그림 속에 반영한다. 파리의 튈르리공원, 몽쏘공원, 그랑자트섬 등은 자본주의의 주역인 시민부르주아들이 상류계급 귀족들과 달리 중산층 도시민의 여가를 위해 즐겨찾던 공공장소였다. 물론 당시 지배층의 호사취미로서 자신들의 개인 정원을 위한 원예와 조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던 것도 문화현상으로서 공원의 등장과 무관치않다.

공원과 더불어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다룬 또 다른 소재는 광장이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바스티유나 레퓌블릭 광장은 공화국의 주역인 시민들의 집회장소로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시계획에 따라 광장들은 불르바르라 불리는 큰길로 연결되었고 광장과 대로의 조경과 건축물들은 과거에 볼 수 없던 매력적인 도시풍경을 자아내었다. 어찌보면 도시화, 산업화, 민주화에 기인한 도시 근대성의 핵심 장면들에 근대회화의 주역들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최근 도시이론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대와 근대도시 모두 그 성장 바탕에는 동일한 스케일 규칙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도시를 한정된 공간에 상당수의 인구가 밀집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곳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도시 인구가 시간 흐름에 따라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도시는 더 외부로 확장될 수도 있을텐데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히려 증가된 인구는 기존 반경 안에서 더욱 조밀하게 무리지어 산다는 것이다. 이 결과 시민들은 보다 밀착해서 함께 살아가게 되고 보다 집중적으로 공공 기반시설을 활용하며 보다 쉽게 상호작용하고 궁극적으로 시민 일인당 생산성은 증가하게 된다. 한마디로 밀집된 도시주거의 인접성 덕분에 삶의 모든 분야 상호작용을 위한 비용이 저렴해진다는 경제효용설이 도시스케일을 결정해준다는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형성된 도시계획 이론을 한국에 적용하여 대도시 주변에 신도시 및 신시가지를 건설하여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베드타운을 조성하는 도시 팽창방식은 처음부터 예견된 도시계획 참사가 아니었을까? 서울 및 수도권만을 유일한 예외로 하고 그 나머지 광역시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은 무리하게 추진된 자의적인 도시계획 추진의 폐해가 아닌가?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구조에만 의존해왔던 도시경제는 이제 인구절벽이란 현실을 감안해 도시 혁신을 위한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원도심으로 다시 시민들을 불러모으자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대전 도심을 객관적 관찰자의 눈으로 꼼꼼히 살피면 어렵지않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광장이나 공원이 거의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뉴욕의 타임즈스퀘어나 센트럴파크, 파리의 콩코드광장이나 룩상부르 공원, 런던의 트라팔가 스퀘어나 하이드파크 등은 그 자체가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가장 먼저 찾게되는 향유 대상이기도 하다. 과거 초고층 빌딩들이 무성한 스카이라인과 랜드마크 건물이 대도시의 특성으로 간주되었다면 이제는 사회적 소통망에 기인한 생동감있고 창조적인 삶을 위한 공공장소가 도시의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되었다. 세계 어디나 주요 대도시에선 한결같이 문화적 도시재생이 트렌드라고 한다. 그런데 대전에선 문화적 도시재생은 실종되고 초고층주상복합 건물과 같은 도시재개발 열기만 뜨겁다.

요즘 뉴욕이나 파리의 공원을 보면 뮤지컬이나 클래식, 댄스공연은 물론 영화상영이나 패션쇼가 그 안에서 열리는가 하면 무료 요가 레슨이나 원예교실과 같은 체험과 배움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휴식과 레저 공간이었던 공원이 소통과 나눔을 위한 열린 문화광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념이 대립하는 광장보다 열린 복합문화공간과 같은 공원을 대전의 도심 곳곳에 조성해 보면 어떨까? 이런 공원이라면 그 주변에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 아니라 책방, 카페, 식당, 기념품·선물가게 등이 들어오지 않을까? 초고령화 사회에 노년층과 청년들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모여사는 활기찬 원도심을 그려본다.

박동천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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