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니 예산 대흥초 교사
최하니 예산 대흥초 교사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다. 졸업을 준비하는 요즘, 아이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다 보니 문득 교사의 학급 운영을 연애에 비유했던 어떤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 동안 이토록 강력한 만남을 새롭게 반복해가는 연애라니.

우리 반은 여학생 4명과 남학생 3명으로 총 7명이다. 다른 학교에 비하자면 고작 일곱뿐인 숫자지만 이 아이들은 온종일 자신만의 색깔로 교실을 빈틈없이 채운다. 어느 틈엔가 무럭무럭 자라나 몸집이 나보다 한 뼘씩은 더 큰 아이들은 서로 떠들고 뒹굴며 온기를 뿜어낸다. 덕분에 우리 교실은 언제나 따뜻하다. 올해 나의 학급 연애담을 풀어보자면 지난해 2월로 돌아가야겠다.

학기 초 교실을 물려받으며 선배 교사에게 작은 블랙 보드 하나를 함께 받았다. 그냥 두기는 아까워 교실 앞쪽에 월중 행사와 함께 캐릭터를 그려 넣어 학급 환경을 꾸미는 데 사용했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갈 때가 되면 블랙 보드에 그림과 글을 써넣으며 나는 나대로 그림 그리는 재미를 느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행사를 알 수 있어 그것은 우리 반에서 나름 가치 있는 존재가 됐다. 6월 즈음 아이들은 내게 자신들이 원하는 캐릭터를 그려 달라 요청했다. 사실 정말 자신 없었지만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마구 그려내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졌다. 아이들에게 나는 이내 그림 잘 그리는 선생님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세 살 눈에 나는 은근히 대단한 사람이었다. 대놓고 선생님을 신기해하는 나이는 지났기 때문에 아이들은 조용히 나를 탐색하고 선생님의 능력을 궁금해 했다. 아이들은 으레 선생님은 다 잘한다는 기대를 걸었다.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호수 위 백조처럼 최선을 다해 학급을 가꿨다. 실제 나는 아주 어설프고 빈틈투성이인데, 이런 내 허점이 드러날 때마저 아이들은 그것이 선생님의 계산된 의도라 여기는 지경에 달했고 그럴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나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스스로 낯설고 어려울 때가 있곤 하다. 그럴 때면 우리 반 아이들은 아이다운 모습으로, 때로는 친구 같은 모습으로 덜 자란 교사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볕을 내려줬다.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는 만큼 나도 아이들을 통해 나 자신을 비추고 돌아보며 새 순을 틔울 수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영양분이 돼주었고 이렇게 우리 연애담은 끝이 나고 있다.

더 사랑한 쪽이 더 아쉽다 했던가. 아이들이 하교하고 우르르 빠져나간 텅 빈 교실의 적막 가운데에서 담임은 애틋하기만 하다. 러브 레터에는 "좀 더 따뜻할걸, 좀 더 잘해볼걸"하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선명했던 아이들과 나의 시간들은 차곡하게 쌓여가는 하루들 사이로 흐릿해져가 각자의 기억 한 켠에 사진처럼 자리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열세 살을 떠올렸을 때 부디 즐거웠던 한 때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감사한 시간들을 추억하며, 담뿍 사랑을 담아 선생님의 러브 레터를 보낸다. 최하니 예산 대흥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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