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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삶이 풍요로워지는 '사이'

2020-01-10기사 편집 2020-01-10 07: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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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원 극작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만큼 인간의 매력을 나타내는 정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스스로 사고(思考)할 때만큼 아름다울 때가 없지 않나.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사는 게 팍팍해지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극을 쓸 때 나는 '사이'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대사와 대사, 행동과 행동의 틈에 '사이'를 넣어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듯, 사는 데도 '사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내 손목을 붙잡고 달리는 대로 매달려갈 수밖에 없다. 올해가 그랬다. 쉬지 않고 공연을 했고, 결국 12월 공연을 마치고 일주일을 아팠다. 속을 다 비워내며 그간 빈틈없이 채워 넣기만 한 게 꽤 버거웠던 모양이구나 싶었다.

12월에 올린 연극 '환도와 리스'의 대사 중에 '생활전선에 나가 싸운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처럼 먹고 사는데 바빠 문화예술을 즐길 여유가 없다고 한다. 나는 그들을 가장 바빴던 올해를 보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베짱이처럼 개미들을 비웃다가 개미 흉내만 냈을 뿐인데 땀을 뻘뻘 흘리게 되자 절감하고 동감한 셈이다.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다. 삶에 손목이 잡혀 끌려가는 와중에도 잠시만 얼굴을 들면 하늘이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꽃과 나무가 보인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들과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그건 말 그대로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고, 당장은 추하고 괴로운 것이라도 '아름다운 사고(思考)'를 갖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런 것들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넓히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 풍요로움에 대한 기대가 생활전선의 전쟁 속에서도 예술이 죽지 않고 떳떳하게 존재해 올 수 있던 이유가 아닐까.

2020년은 모두가 자기 삶에 사이를 그려 넣을 수 있는 해가 되길 바란다. 너무 바빠 틈이 없는 삶일지라도 예술이 스며드는 순간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니, 우리도 우리끼리만 놀지 말고 그들에게 언제든 스며들어보길 바란다. 예술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을 때 더 아름다워지고, 사람들은 문화예술에 자기 틈을 내어줄 때 더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우리가 서로 마주쳐 서로의 삶에 '사이'를 적어넣는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김주원 극단 백 개의 무대 대표 (극작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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