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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심사를 숙고

2020-01-09기사 편집 2020-01-09 08: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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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황인선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1월은 특별한 달이다. 신춘문예의 결과물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이 길을 선택하고 난 후 나는 매년 모든 부문의 모든 작품과 심사평, 수상소감을 다 읽어봤다. 기성작가들의 작품보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꼭 찾아 읽는 이유는 이들이 신인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없던 참신성이나 아직 정제되지 않은 패기를 나는 사랑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면모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한 줄을 읽으면 그 다음 줄이 예상되는 어디서 본 듯한 글들이, 기술이 아닌 예술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게 나는 불편하다. 이럴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진부한 수상소감이 따라온다.

'~를 하다가 당선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나는 ~ 때문에 힘들었다. 이제 그 보상을 받는 것 같다. ~에게 감사하다.' 이러한 일종의 공식에 살을 덧붙인 글들. 나처럼 수상소감만 수십 개를 읽는 사람에게는 고통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먼저 과거의 나는 어땠는지 되돌아봤다. 대전일보에서 내 수상소감은 단 한 줄이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탈 줄 알았습니다." 이었거나 그와 비슷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 수상소감이 지면에 실리는 일은 없었다. 뜻은 잘 알겠으나 지면 사정상 이대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담당자 분의 말씀에 나는 수상소감을 수정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참신하고 패기 있는 작품을 쓴다고 해도, 당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읽을 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정말로 그런 작품이 없어서 안 뽑힌 것 아니냐고. 한국문학의 미래를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작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작품이 그 신춘문예에 응모를 안 하는 것일 뿐.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신춘문예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지망생들이 많다. 그들은 글씨체나 크기뿐만 아니라 장평이나 자간까지 신경을 쓴다. 이 신춘문예가 어떤 스타일을 뽑는지 파악을 안 했을 리가 없다. 음악으로 치자면, 자기가 나가는 오디션이 '쇼 미 더 머니'인지 '미스 트롯'인지 정도는 안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작품이 응모를 하느냐는 지원자에게 달렸다기보다는 심사위원에게 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종종 심사평에 한탄을 늘어놓는 심사위원들이 있다. 작품의 질적 하락에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이 '라떼'나 찾고 있는 사람은 심사위원의 자격이 없다. 타인을 심사하기에 앞서 자신이 과연 신인을 뽑기에 적절한지 스스로를 심사해 봐야한다.

신인들의 패기가 억눌려있다는 것은 수상소감에서도 드러난다. 신춘문예의 수상소감은 두 번 하게 되는데 지면에 실리는 것이 첫 번째,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며 하는 것이 두 번째다. 당연히 두 번째에는 사전검열이 없다. 그곳의 수상소감이 더 신선하고 재미있다. 나 또한 그곳에서는 신나서 얘기를 했다.

"2년 전 처음 시상식에 와서 수상소감을 했을 때 저는 딱 한 마디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수상소감을 마치고 내려오자 주변에서 수상소감이 왜 이렇게 짧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또 대답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탈 텐데 굳이 길게 할 필요가 있냐고.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제치고 상을 탄 작품 중 저보다 잘 쓴 작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게 적폐구나."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서둘러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상을 받고 나니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누군가 제 작품을 보고 과거의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아서요. 적폐 소리 안 듣도록 좋은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나는 성공한 작가가 되지는 못 했지만, 적폐가 되지도 않았다. 신춘문예의 심사까지 할 정도면 성공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스스로 적폐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길 바란다.

황인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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