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지역에 전운이 고조되면서 우리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놓고 고심하는 모양이다. 그동안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한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다면서 자유 항행을 위한 공동방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해 왔고, 우리 정부도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를 긍정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미국이 이란군의 상징인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하고, 이란도 미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대응하면서 전면전의 조짐을 보이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현재로선 파병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6일 긴급 NSC 상임위 회의에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의 파병 요구에 응하자니 이란군의 표적이 될 것이 뻔하고, 거부하자니 한미동맹의 균열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태도변화 등을 우려해서다. 그만큼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언제까지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엊그제는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까지 한국 방송에 나와 호르무즈 파병을 언급하며 압박했다. 이란도 미국의 반격에 가담하면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진퇴양난에 처한 우리 정부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결정을 내려하는 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는 한미동맹이라는 명분 못지않게 우리 국민의 생명권, 국익과 결부된 문제다. 한국 원유수송선의 70~8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현실에서 이란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돌아선다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게다가 공동방위군은 평화유지군이 아니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곧바로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 군 장병들의 목숨을 이역의 전쟁터에 맡길 만한 당위성을 찾기도 힘들다. 정부가 명분과 실리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는 미지수지만 파병카드만은 뽑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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